므네모시네의 집 / 정다영

자르디니의 마지막 국가관인 한국관은 기공 도시계획부의 일원이었던 건축가 김석철(1943-2016)과 이탈리아 건축가 프랑코 만쿠조가 설계했다. 가정집을 닮은 한국관의 평면에 이번 전시를 위한 그리드 체계가 만들어졌고 그 위에 2개의 아카이브와 초청 작가들의 신작들이 놓인다. 배형민 교수의 진단처럼 한국관은 전시관이라기보다 집에 가까운 공간이다. 스케일이 집과 같고 집이 가져야 할 프라이버시도 있다. 기존의 벽돌집, 계단식 원통 공간, 가벼운 철제 프레임의 입구 등 밖에서 볼 때 다양한 집의 기능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1 한국관 건설 당시 유일하게 남아있던 벽돌방은 그 집의 기원처럼 전시의 출발이 되는 장소다. 침실처럼 숨어있는 벽돌방은 조작적으로 가동하는 내밀한 “기억장치”다. 김수근의 기공 사장 재임기인 1968년과 인접한 시간을 담는 이곳은 신작들의 불완전한 참조점이자 색인이다. ‘부재하는 아카이브’는 세운상가, 구로 무역박람회, 여의도 마스터플랜, 엑스포70 한국관 등 역설적으로 온전하게 역사화 되지 못한 기공의 작업에 대한 증언이다. 건축가들의 이상은 세상의 이목을 끌었지만, 일부는 국가로부터 선택되지 못해 수정되거나 폐기되었다. 오히려 조금씩 어긋났던 작업의 결과는 국가기록원과 같은 제도적 기록보관소에 파편적으로 남아 있다. 실현되지 못한 기공 건축가들의 제안은 현존하는 위 장소들을 완전히 대변하지 못하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과 갈등을 되새긴다. 이 공간은 역설적으로 그렇게 실패한 이상을 수집하는 장소다. ‘부재하는 아카이브’에서는 제도적으로 기록되지 못한 것, 한낱 보고서의 그림으로만 남은 건축가들의 실패한 이상의 위상을 재배치한다. 김수근이 김종필과 석정선 등의 지원을 받아 발간한 『공간』은 이러한 이상을 공공을 대상으로 배포하기 위한 유일한 발간물이었다. ‘부재하는 아카이브’에서는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현현이기도 한 『공간』을 이러한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반면 집의 “거실”에 위치하는 ‘도래하는 아카이브’는 어떤 상황이자 분위기로 존재하는 모호한 영역이다. ‘어두운 침실’에서’ 밝은 거실’로 이동하는 동선 위에 작품들이 놓여있다. 개방된 천창과 반짝이는 스테인레스 판 위에 경계 없는 아카이브 구역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작품과 짧은 텍스트 그리고 관람자의 행위가 겹치면서 환영처럼 어른거린다. 거실은 한국에서 종종 사적인 집 안에서도 공적 공간으로 묘사된다. 김수근은 1972년 <서울신문>에서 “시민을 위한 거실”로서 서울의 미래 공간을 묘사한 바 있다. 거실의 기능처럼 이곳은 구체적인 용도로 사용되기보다 이야기가 교차하는 살롱과 같은 공간이다. 이 공간에 사진가 김경태와 미디어 아티스트 서현석의 작업이 있다. 유령처럼 출몰하는 4개 장소에 대한 기억의 몽타주는 김경태의 사진 작업을 통해 압인 된다. 서현석은 서울의 이면에 평행 현실처럼 아른거리는 굴절된 도시의 비전을 영상으로 가둔다. “통제를 벗어난 아카이브”이자 “검색 도구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대안적인 아카이브로서2 이곳은 과거의 파편적인 기억 위에서 국가, 건축, 아방가르드를 바라보는 새로운 조건을 생성시키고자 하는 장소다.


- 전시 도록 중에서

1 Hyungmin Pai, “Dwelling on the Korean Pavilion” in Common Pavilions: The National Pavilions in the Giardini of the Venice Biennale in Essays And Photographs, ed. Diener & Diener Architects with Gabriele Basilico (Zurich : Scheidegger & Spiess, 2013), p. 263.

2 Sven Spieker, The Big Archive: Art from Bureaucracy (Cambridge, MA: MIT Press, 2008), p.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