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세포
전진홍, 최윤희(바래)

1968년 9월 9일 한국 최초의 국제 박람회인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가 ‘내일을 위한 번영의 광장’이란 주제로 베일을 벗었다. 허허벌판이던 제 2 구로공단 부지에서 42일이란 짧은 기간 동안 열렸지만 170만 명 이상 찾아오는 대성공을 거둔 이 행사는 단순히 상품 전시뿐 아니라 국가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이었다. 이를 위해 강력한 국가 주도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추구하던 당시 장밋빛 미래를 국내외적으로 과시하고 널리 알리기 위한 하이테크의 상징적인 건축이 절실히 필요했다. 역설적이게도 체제의 지속적 안정을 원하는 정부와 혁신을 꿈꾸는 전위적인 건축가가 동상이몽 일지언정 ‘꿈’을 꾸었고, 이 꿈 세계에서 노동자 개인의 희생은 옅어졌다. 이런 꿈들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구로공단의 수많은 노동자는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일하면서도 방 하나에서 6~7명이 교대로 주거하는 일명 ‘벌집’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한국의 압축고도성장을 적나라하게 상징하는 구로 공단은 유례없는 속도로 진행된 산업화와 도시화의파고를 겪었다. 1963년 서울의 팽창은 농경지였던 구로에 다다랐고, 1967년 한국 최초의 수출산업공단이 세워지며 한국 경제 성장을 가장 밑바닥에서 견인했다. 2006년에는 벤처 및 패션전문단지로 탈바꿈되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벌집은 더 이상 공단에서 일하는 이촌향도 노동자들의 터전이 아니라 저렴한 비용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다양한 국가의 이주 노동자들이 머물다 가는 장소로 질긴 존재감을 이어간다. 일제 강점기 시절 간도로 떠났다가 코리아 드림을 위해 다시 돌아온 중국 동포를 비롯해, 저마다의 꿈을 따라 이주한 다민족 노동자의 터전이지만 한국의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 철저히 비가시적인 곳으로 존재하던 구로는 국가와 민족의 내적 모순, 부정과 배제로 잠재적 갈등이 충만한 이야기의 땅인 셈이다.

우리는 한국무역박람회와 벌집, 노동 착취의 현장과 테크노 밸리를 오간 구로의 파편을 수집하는 것에서 “꿈 세포”를 시작한다. 근대 건축 아방가르드가 꿈꾸던 총체성이란 가상이 깨져버린 현장에서 단편을 수집하고 재구성하며, 단순히 스타일이나 형태의 창작에서 벗어나 건축을 사회-경제적 생산 과정의 일부로 이해하길 촉구한다. 기술이 진보의 도구라는 근대의 믿음을 견지해 미래지향적인 건축을 제안하면서도 비판적인 시선을 감추지 않고 구로의 미래를 상상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사회 권력이 시민에게 본격적으로 이양되는 작금의 상황 속에, 1968년 한국무역박람회가 국가의 장밋빛 미래를 국민들에게 제시하려 했듯, 2018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전 세계 시민과 함께 같지만 다른 ‘달콤한 미래’를 꿈꾸어보길 기대한다.

바래, 꿈 세포, 2018













협업

영상
스테이크 필름 (케빈 쿠이퍼스)

그래픽 디자인
S/O 프로젝트 (조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