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정지돈

정태순은 1949년 경상북도 영천에서 태어났다. 1968년 이화여대 영문과에 입학했고 다음해 엑스포70 한국관 안내원으로 선발되어 6개월 간 오사카에 체류했다. 20세기 중반, 식민 지배와 이념 갈등의 여파로 반토막 난 동아시아의 국가에서 태어나 10대에 혁명과 독재를 경험하고 대학에 입학한 여성에게 서울은 어떤 곳이었을까.

정태순이 작품의 화자가 된 것은 우연한 일이다. 엑스포70 자료에서 한국관 멤버들의 단체 사진을 보는데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가 된 남자들 사이에 홀로 있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 그녀가 누군지 궁금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정체를 알지 못했고 어떤 사람인지, 무슨 역할을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곳에 있었지만 그곳에 없었다.

개발도상국의 예술가와 건축가,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늘 동조와 비판이라는 이분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내게 동조와 비판은 동일하게 느껴진다. 둘 모두 체제에 종속되어 있고 둘 모두 권력지향적이다. 그와는 다른 관점에서 미래에 대한 매혹과 그것의 불가능성에 대해 말할 순 없을까. 동조/비판의 시스템에서 소외된 관찰자, 내부의 소수자가 내는 목소리.

제목인 ‘Light from Anywhere’는 타고르의 시구 ‘Light from the East’를 패러디한 것으로 엑스포70 테마위원회 회의에서 논의되었던 문구이다. 국제 저널리스트인 마쓰모토 시게하루가 제안했으나 결과적으로 선정된 테마는 ‘Progress and Harmony for Mankind’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