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

강 익 중

몇달전, 작가 강익중과 점심을 함께 하기 위해 맨해튼 미드타운의 어느 한국 음식점에 들어갔었다. 우리는 그가 언젠가 자신이 존경하는 백남준의 작품에 관한 토론에서 언급한 바 있는 비빔밥을 주문했다. 얼마 후 뜨거운 돌솥 안에 다양한 나물과 고기가 종류별로 가지런히 담겨져 나왔다. 비빔밥을 먹어 본 적이 없는 나는 강익중이 일러주는 대로 일단 고추장을 넣고 숟가락으로 모두 섞어ㅓ 비벼서 먹었다. 내가 비빔밥을 주문한 이유는 강익중이 보는 백남준 작품에의 연관성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게 될 것 같은 막연한 기대에서 였다. 그러나 나는 그 맛있는 비빔밥을 다 먹은 후에도 여전히 어리둥절한 가운데 그에게 직접 물어봐야만 했다.

백남분에 대한 강익중의 기억은 그가 한국에서 미술학도였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백남준의 작품에 대한 접근방식이 자신과 유사함을 발견했다. 1980년대 중반 즈음, 백남분이 어느 TV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제작 방식을 비빔밥에 비교한 적이 있다. 이 한국전통음식은 원래 여러가지 채소와 고기, 생선 등을 밥에 한데 섞는 것으로 그밖에 들어가는 재료는 개인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변할 수 있지만 밥은 예외 없이 향상 그 밑에 깔려있다. 강익중은 자신과 백남준의 작품 방식이 비빔밥의 원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샌트란시스코 캡스트릿 프로젝트에서 전시한 그의 작품명에도 있듯이 "모두 넣고 한데 섞는 것이다". 비빔밥을 만드는 사람은 주어진 모든 재료에 대해 융통성과 열려진 마음가짐을 갖고 있어야 한다. 비빔밥을 매개로 한 백남준과 강익중의 연관성에 대한 강익중의 설명을 듣고 난 나는 두 작가의 작품을 함께 선보이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백남준의 비디오 모니터와 강익중의 그림 수천 점으로 이루어진 전시 "멀티플/다이얼로그"{{."멀티플/다이얼로그:백남준과 강익중", 1994년 7월 22일 ~ 9월 28일 챔피언 휘트니 미술관에서 전시.}}였다. 백남준과 강익중을 둘러싼 일상 속의 미국 대중문화는 그들 각각의 작품 속에 이미지, 오르제 또는 사운드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한국 태생의 이 두 이민 작가는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을 둘러보며 그 채택된 문화를 경이의 눈으로 끊임없이 주신한다. 이들의 관찰은 유사한 자기변명조의 유머와 번득이는 재치를 보여준다. 방법적인 측면에서는 작은 기본단위의 반복적 배치를 통해 커다란 전체를 형성시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백남준은 크고 작은 ,TV,모니터들을 다양한 배열방식으로 잔뜩 쌓아올리는 데 반해 강익중은 손바닥만한 크기의 캔버스(3x3인치)를 격자 모양으로 정렬시킨다. 두 작가 모두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옛말을 인용하며 특히 기본단위의 수량(數量)을 크게 증가시킴으로써 현대사회의 거대한 힉일성을 포착하는점이 두드러진다. 한국 음식(비빔밥)의 특성을 통해 강익중, 백남준의 미술을 유추해 본 결과, 기본 단위구조는 불변하는 요소로서 삶에서 추출된 다양한 이미지들에 유기적인 형태를 주는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강익중과 백남준의 미술은 모든 재로를 넣고 혼합하는 것이다. 백남준이 퍼포먼스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에뛰드" 도중 관중 속으로 뛰어들며 작곡가 존 케이지의 셔츠와 넥타이를 자른 1960년 바로 그 해에 강익중이 청주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와 유럽 추상양식을 익힌 그는, 1984년 졸옵 직후 뉴욕으로 건너가 브루클린에 있는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 과정에 들어갔다. 이 무렵, 그가 현실적인 필요에서 개발한 가로 세로 3인치 규모의 캔버스 작업은 지금까지도 그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형식이 되었다.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그는 맨해튼의 한 식품점과 킨스 지역 파락어웨이의 벼룩시장에서 매일 12시간씩 일하곤 했다. 매일 파락어웨이 까지 가는 지하철에서의 긴 시간을 유용하게 쓸 방법을 모색하던 중, 호주머니에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3인치 크기의 캔버스를 생각해 냈다. 결국 지하철은 그의 이동 작업실이 된 것이다. 이 당시 그의 작업은 순간적으로 스치는 생각이나 공상, 관찰한 것, 그날 일어난 일에 대한 반영 등을 즉각적으로 기록한 일기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작품들은 캔버스에 오브제, 드로잉, 당너들이 덧붙여져 있어 회화라기 보다는 혼합기법에 속한다.작가의 밑에 의하면, 3인치라는 크기는 인간의 두 눈 사이의 거리와 일치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편리한 이점이 있다. 한편 이 특정치수는 동양의 선(禪)사상에서 가장 완벽한 크기로 보는 것으로, 일본에서는 쇼지 미닫이문의 격자 무늬어ㅘ 전통적으로 술잔으로 쓰이던 나무상자도 3인치 크기로 되어 있다. 이 소형 캔버스는 손에 꼭 들어맞아 손에 나타난 금으로 그 사람의 내면을 읽는 동양 철학과도 연결된다. 또한 작가는 "눈 먼 쇼건"이라는 일본영화의 한 장면에서 사무라이가 자신의 나막신을 맞들어 그 사이에 생긴 조그만 네모 틀을 통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던 것을 회상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강익중의 그림들은 회화를 세계로 향해 열려진 창으로 본 이탈리아 르네상스적 개념에 상응하는 동양적 해석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