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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페이즈망: 벌어지는 도시
    데페이즈망: 벌어지는 도시
    전시기간
    2011.06.15~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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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아르코미술관 기획공모전
depaysement - blooming the City



기자간담회 Press Conference: 2011.6.14(화) 오전 11:00, 아르코미술관 3층 세미나실

오프닝 리셉션 Opening Reception: 2011.6.15(수) 오후 6:00 – 8:00

심포지엄 Symposium: 2011.6.17(금) 오후 1:00 – 5:00

                                           (발제자: 안창모, 이영미, 김미경, 최재원 및 참여작가 토론)

참여작가 Artists: 강국진, 김기영, 김기찬, 김형관, 박경근, 이제석, 임명진(임단), 전몽각, 잭슨홍 주재환, 최병소, 하태범, 홍형숙 (총 13명, 가나다 순)

 

 

 

전시개요

 

아르코미술관에서는 6월 15일(수)부터 7월 17일(일)까지 기획공모전 <데페이즈망-벌어지는 도시(depaysement: blooming the city)>전이 열린다. 아르코미술관이 기획의 다원성을 위해 외부기획자와의 협업을 통해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미술사학자 김미경(한국근현대미술연구소KAR 소장/강남대학교 교수)과 독립 큐레이터 최재원이 공동 기획자로 참여한다.

 

최근 도시와 역사를 조망하는 전시들이 꽤 많이 열리고 있다. 우리의 도시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커진 탓이다. 그러나 도시는 그것을 물리적 구조로 보는가, 역사적 산물로 보는가, 문화적 총체로 보는가, 다시 말해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인식된다. 한국근현대미술과 실험미술을 집중 연구해 온 소장 미술사학자와 독립 큐레이터가 공동 기획한 <데페이즈망-벌어지는 도시>전은 우리의 도시를 문화 예술의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특히 도시 속에 담긴 문화 예술의 혼성적이고도 융합적 특성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산업화 이후 도시에서 벌어지는 문명•문화적 충격

 

옛 조선의 모습이 일본 식민지 치하에서 계획된 도시로 변모하게 되자, 우리는 새로운 도시에 대한 동경과 익숙한 전통에 대한 애착이 뒤섞인 채 일종의 정신적 충격을 겪었다. 그러나 『날개』에서 작가 이상이 일본의 근대 도시에서 느꼈던 시지각적 충격을 문학으로 표현을 때, 정작 사람들은 그 공간감과 상상력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해방 이후 4.19와 5.16을 거쳐, 경제개발계획의 역사적 토목공사였던 경부고속도로가 한반도에 뻗어가고 고층빌딩이 서울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새마을 노래처럼 개발도상국을 향한 꿈이 펼쳐지는 길이었지만, 사라진 바가지 대신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를 만들어 썼던 우리는 결코 과거 기억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우리의 도시는 식민 지배와 근대화, 서구와 전통이 혼재하는 삶 속에서 서구 근대의 도시형성 과정과는 매우 다른 복합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전시는 흥미롭게도 그 혼성적 특성을 ‘데페이즈망’이라는 말로 풀어낸다.

 

 

데페이즈망(depeysement) 도시

 

“수술대 위에서의 우산과 재봉틀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다운”이라는 로트레아몽의 말처럼, 낯익은 사물들이 낯선 장소에 놓일 때 일어나는 충격을 미학적으로 간주하는 말이 초현실주의 단어인 “데페이즈망”이다. 그러고 보면 사실상 우리의 도시도 “데페이즈망” 도시이다. 도시의 물리적인 외형만이 아니라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문화예술 모두가 “데페이즈망”이다. 자동차가 질주하는 직선 도로 옆에 초가집이 기대 있거나, 3.1 고가도로 밑에 가리워져 있던 청계천 쓰레기와 복구사업 등은 식민지의 아픔과 서구 근대, 그리고 전통이 얽힌 가운데 우리의 의식구조를 형성해 왔다. 그것은 익숙한 사물들이 낯선 환경에 돌연히 놓일 때 발생하는 충격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데페이즈망의 충격은 이 전시의 부제처럼 “벌어지는 도시”에서 분절되고 갈라진다. 또한 그 ‘갈라짐’과 ‘다면성’은 “어떤 상황이 벌어지듯이 시작된다”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전통과 현대의 충돌과 충격

 

196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의 경제 발전 계획은 옛 초가집을 없애고 양철지붕이 들어서며, 일본식 절충가옥 바로 옆에 현대식 고층건물이 나란히 들어서는 기묘한 만남의 충격을 일으켰다. 우리는 아마추어 사진으로 간주되어 왔던 김기찬의 ‘골목길’과 전몽각의 ‘경부고속도로’ 사진들에서 옛 모습이 새로운 도시와 데페이즈망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김기찬은 근대화 도시 속에서도 어수룩한 듯 친근한 골목길과 강아지를 품고 있으며, 전몽각은 어느 날 갑자기 펼쳐질 고속도로 풍경 옆에서 보따리를 이고 무심한 듯 걸어가는 한복 차림의 여인을 바라본다. 사태의 변화가 의식의 변화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국가정책이 국민정서와 늘 동행했던 것도 아니다. 우리의 변화무쌍하고 격동적이었던 한국근현대사는 그런 이질적이고 돌발적인 상황의 데페이즈망이었다.

 


(고)김기영, <하녀>, 스틸컷, 1960
무대미술과 음악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새롭게 편집한 영상이 미술관에서 최초로 상영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는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와 산업 광고 디자인도 포함된다. (고)김기영의 감독의 1960년 영화 <하녀>(1960)에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층 양옥집과 중산층 가정의 근대적 삶에 대한 꿈에 낮은 신분의 ‘하녀’가 데페이즈망 되고, 끝없이 여닫히는 ‘문’을 통해 온 집안에 울려 퍼지는 피아노와 재봉틀 소리는 전통과 현대의 표상으로 충돌한다.

 

한편 이번 전시는 베를린 영화제 포럼에 출품된 박경근 감독의 영화 <청계천 메들리>(2010)에 주목하였다. 이 작품은 우리 도시의 정치사회사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청계천’의 문제를 미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쇠와 기계장치가 구동하는 청계천의 미로 같은 골목길에 감독 자신의 가족사를 담담하게 진술하는 목소리가 오버랩 되는 것을 ‘데페이즈망’으로 보기 때문이다.
 


박경근, <청계천 메들리>, 스틸컷, 2010

 

청계천의 한 골목길을 따라, 감독은 일제 강점기에 고물상을 운영하던 할아버지의 기억이 자신에게로 내려오고 있음을 독특한 영상과 나레이션으로 말한다.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섹션에 공식 초청작이다.

 

 

오늘날 도시와 하이테크를 다루는 젊은 작가들은 1960년대에 이미 도시적 충격을 세련된 미학으로 접근했던 선구적 작업들로부터 오늘날의 한국문화예술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한국 최초의 라이트 아트인 (고)강국진의 작품(1967)과 임단(임명진)의 철사(1967)가 그것이다. 인공적인 빛과 기계화의 충격들로 가득 찬 도시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충격과 외상을 남겼지만, 이번 전시의 최고령자(83세)인 임명진은 임단이라는 가명으로 1960년대부터 언더그라운드 예술활동을 했으며 그의 역동적인 철사 작업으로 도시의 물질성과 공간성을 재현한다. 최초의 퍼포먼스 <색물을 뽑는 비닐주머니>(1967.12.11)등 실험미술의 선구자 강국진의 <시각 Ⅰ, Ⅱ>에는 도시의 인공 광선과 시각적 충격, 그리고 내면적 공허함이 뒤섞여 있다.

 

 

미디어와 광고

 

그렇다면 새마을 운동과 유신을 거쳐온 우리 근현대사 속에서 작가들은 미디어의 권력을 어떻게 해석해 왔을까? 최병소의 ‘신문’(2008)은 볼펜과 연필로 모든 메시지를 지운 ‘신문 아닌 신문’이자 시커먼 물질로 탈바꿈된 신문지이다. 그의 신문지는 1970년대 한국 단색조회화의 열풍 속에서 ‘검은 색’이라는 ‘모노크롬’을 넘어, 시대와 사회를 날카롭게 읽어내는 ‘미디어 권력 메시지’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가 하면 이번 전시에는 아르코미술관의 한쪽 벽면 전체를 덮을 정도로 큰 규모의 작품이 전시된다. 부동산 광고 전단지가 과연 미술로 이해될 수 있을까? 2004년부터 2008년까지 4년 동안 일간 신문의 부동산 광고를 모아 처음 공개하는 대작인 주재환의 <천의 얼굴- 부동산 광고>(2004-08)는 부동산 광고들이 과잉 생산될 때 개별 정보들이 말소되는 아이러니를 압도적인 스펙터클로 보여준다. 그 작가의 ‘관점’이 바로 미술이 말하는 예술의 본질이기도 하다.

 


강국진, <시각 I, II>, 각 46x46x280cm, 네온 스틸레스 스틸, 1967

 

 

그렇다면 광고는 또한 미술인가? 정치 캠페인 광고라는 전략으로 이데올로기와 정치•사회적 문제를 실천하고 있는 이제석의 작품, <식량입니다, 미사일이 아닙니다>와 <이불 신문> 등은 이번 전시에서 깊은 미학적 관점을 제시해 줄 전망이다. 또한 산업 광고와 순수미술의 영역을 각기 다른 이름으로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잭슨홍은 사용가치와 재화적 가치라는 용도와 기능에 종속되는 ‘디자인’의 맹목성에 대해 반성적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제석의 광고와 잭슨홍의 디자인은 산업과 미술이 사실 경계일 수 없음을 드러내며 “디자인”에 대한 미학적 시각을 발전시키고 있는 작업들이다.

 

 

도시, 경계인가 교차인가

 

우리의 도시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산업화 속에서 살아왔다. 거기서는 언제나 극단적인 선택이 강요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윤이상과 동백림 사건의 이응로를, 그리고 간첩으로 사형당했으나 2008년 무죄가 다시 선고된 김수근을 기억한다. 이번 전시에서 풀타임으로 소개되는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 2>(2009)는 재독 학자 송두율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조작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과 서구의 근대도 과연 경계 지어질 수 있을까? 재난의 도시를 찍은 보도사진을 하얗게 추상화시켜 재현하는 하태범의 작품, 불타고 있는 남대문을 울긋불긋한 색 테이프를 통해 만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김형관의 ‘남대문’도 우리 도시의 역사를 데페이즈망 하는 또 다른 관점이 된다.

 

 

아카이브로 보는 데페이즈망 도시와 한국근현대사

 

우리의 근대 도시 안에서는 ‘세시봉 열풍’이나 통기타가 ‘장발족 단속’ 같은 검열과 기묘하게 뒤섞여 있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그것은 88올림픽과 ‘붉은 악마’ 같은 국민적 에너지와 데페이즈망 되어 있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이를 좀 더 가시화하기 위해 아카이브를 포함시켰다. 3개의 아카이브는 도시∙건설∙건축 및 정치∙경제∙사회, 그리고 문화∙예술∙대중으로 구성되었으며 230쪽 분량으로 소개된다. 전시 형태로서는 드물게 이북(e-book) 형태로 보여질 아카이브 외에 슬라이드 프로젝션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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