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정신적'세계로의 지향을 위한 동기로서 존재하는 그의 작품은 조각의 전통 개념인 권위적, 기념비적 성격을 띤 수직구조가 아니라 소박하고 단순하게 처리된 기하 형태들이 서로 동등하게 확산되는 수평의 구조를 갖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작품은 서구 추상조각의 거장이며 미니멀 조각의 선구자인 브랑쿠지의 형태개념과 공간내에서 조각의 수평적 확산을 추구한 미니멀리스트 조각가 칼 안드레의 영샹속에 있음이 인정되지만 동시에 그의 작품이 이와같은 서구적 발상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뚜렷하계 독자적일 수 있는 것은 서구의 미니멀 조각이 결국은 철저한 물성의 추구로 흘렀음에 반하여 그의 조각은 물성을 초월한 정신적 도덕성의 구현을 그 표현의 궁극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 도덕성'은 아마도 작가에게 있어서 물성과 손의 조화가 빚어내는 조형의 세계 너머레 존재하는 삶 그자체에 대한 인식의 빛과도 같은 거승로 이는 그의 생각의 뿌리를 이루는 동양적 사고체께가 가능하게 해 주는 부분일 것이다. 작가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하는 철만조각은 작가의 이와같은 정신에의 지형을 과거의 어떤 작업보다도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즉 그가 예전에 사용한 돌이나 나무 브론즈 등 비교적 친근한 질료들로부터 파생된 형체들은 질료자체가 주는 감성에서 벗어나지 않은 대체로 소박함과 정감을 지닌 작은 스케일의 각기 다른 형태의 단위들로서 일말의 장식성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새롭게 사용한 차가운 산업적 재료라 할 수 있을 철망은 작가의 손에 들어오기 이전에는 어떤 '대립된'세계로서의 상징성을 갖고 작가 앞에 존재했던 것으로 이 철망이라는 재료는 주로, 바깥세게로부터의 침입을 차단하고 내부를 격리,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의 구축에 그 쓰임새를갖는 것이　. 이러한 '거부'의 상징을 갖는 질료를 작가가 작업의 매체로 선택한 것은 삶의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일체의 대립, 부정의 요소조차도 보다 나은 커다란 진보와 조화를 위해서 함께 표용되고 수렵될 수 이　다는 변증법적인 인식의 반영일 것이다. 작가는 가시 돋은 형체를 띠고 있는 꼬인 철사의 줄기들을 일정한 길이로 잘라 낸 후 어떤 기계적인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손만을 사용하는 원시적인 작업으로 작원 原型의 구조물을 만들고 그 반복되는 原型들을 바구니 엮듯이 하나하나 엮어 길다란 원기둥을 형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기둥 12개가 전시장 바닥을 가득 메우며 뉘어지게 되는데, 우리가 여기서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부분은 작가가 이 작품을 위해 행한 물리적 조형행위란 단지 철사를 일정 길이로 잘라내고 그 잘라낸 철사를 손으로 엮어圓形을 만든 후 이의 반복작업으로 커다란 원기둥을 형성시키는 지극히 단순한 프로세스라는 점이다. 그가 과거에 만들어낸 형체들은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형체에 대한 기대감과 더불어 긴장과 불안이 수반된 조형행위 속에서 탄생한 것들이었다면 작가가 이번에 새롭게 시도하는 작품을 통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일까. 물론 그의 새로운 조각이 철이라는 물성 자체가 주는 고유의 특성을 간작하고 여전히 원기둥이라는 기본형태를 외관적으로 띠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그의 작업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하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변화는 형체를 구성해가는 과정 자체, 즉 그 부여된 시간의 가치에 대한 작가의 더욱 깊은 인식이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기능에 있어서 우리에게 거부감을 주는 재료를 갖고 굳이 원시적인 제작방법을 선택하여 단순한 반복행위를 기꺼이 수행한 것은 삶의 테두리 속에서 나 아닌 '타자'에 대한 너그러운 수용을 위한 자기극복과 해탈을 체험하고 그 과정 자체에 깊은 의미를 두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함 이었을 것이다. 즉 '다름'에 대한 수용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초극하여 한없이 자유로운 마음의 상태 - 무욕과 허무의 - 를 향해 지향하고픈 작가의 열망이 이러한 조형형태와 조형행위 속에서 표출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거친 철망과 圓이라는 형태가 주는 상호 모순된 특성의 조화를 통해 작가가 추구하는 바는 갈등적 대상과의 무한한 융화, 화해의 시도과정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바로 우리인간의 실제적 삶의 과정에 다름아니며 이형우의 새로운 조각이 갖는 이러한 상징성의 강한 울림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는 까닭에 그의 작업은 존재의 아름다운 당위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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