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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극지에서 마주한 자연의 숭고함_
<남극/북극 출발→인천공항 도착>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극지연구소,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함께
오는 11월 30일까지 전시 <남극/북극 출발→인천공항 도착>을
공동 개최한다. 기온 상승으로 녹는 얼음, 남극의 백야,
사라질 위기에 처한 북극해 등 예술가들이 극지에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통해 기후 위기, 환경 문제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전시를 기획한 김효정 큐레이터,
본 전시에 참여한 김세진, 손광주, 이정화,
홍기원 작가에게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이_ 김효정·김세진·손광주·이정화·홍기원
공항에 도착한
극지 위 예술가들의 이야기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 253번 게이트 인근에 마련된 전시 공간 입구에 국내 첫 쇄빙선으로 알려진 아라온호를 형상화한 커다란 배 구조물이 보인다. 그 뒤로 컨테이너에 실린 작품들이 관람객들과 만난다. 전시 <남극/북극 출발→인천공항 도착>은 그 이름처럼 극지에 다녀온 작가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남극과 북극의 모습을 보여준다. 김세진, 김승영, 손광주, 염지혜, 이정화, 조광희, 홍기원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에는 남극 혹은 북극을 관찰하고 표현한 설치 및 미디어 작품 7점을 만날 수 있다. 남극으로 떠난 예술가들은 세종기지에서, 북극으로 떠난 예술가들은 쇄빙연구소 아라온호에서 머물렀는데 같은 공간을 경험했음에도 이들의 작품은 환경과 권력, 국가라는 거대한 이슈부터 자연 앞에 놓인 개인의 일상과 감정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효정 큐레이터에 따르면 공항과 극지는 공통점이 많다. 과학적 목적으로만 이용되는 극지와 공항의 출국장은 특정한 국적이 없다. 또한, 백야와 극야가 반복되는 극지처럼 공항 역시 24시간 여행객들의 발길이 닿아 특정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듯하며 누구든 영구히 체류하지 못하고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다. 극지의 특수한 환경을 경험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극지와 닮은 공항에서 여행객들과 만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 2011년부터 극지연구소와 함께 매해 예술가들을 남극과 북극에 파견하는 ‘극지 레지던스’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23명의 예술가가 참여했으며, 앞서 지난 6월 공근혜갤러리에서 성과 보고전 <0.1cm: 극지로 떠난 예술가들>을 진행했다. 이번 전시는 <0.1cm: 극지로 떠난 예술가들>의 후속 전시로 작품을 관리하는 상주인력을 둘 수 없어 유실 우려가 있는 회화, 사진, 문학 작품 등을 제외한 영상 작품, 설치 작품을 선별해 전시 환경에 맞게 재구성했다. 김효정 큐레이터는 “공항에서 전시를 준비하는 것이 도전이었지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면서 소감을 전했다.

전시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전시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전시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전시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전시 전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전시가 열리는 장소는 검색대를 통과해서 들어가는 출국장, ‘에어 사이트(Air-Site)’라는 공간인데요. 티켓 발권을 하고 외부인이 출입할 수 있는 랜드 사이트(Land-Site)와 비교해 극명한 장단점이 있는 장소입니다. 보통 외부인 출입이 가능한 랜드 사이트에 더 많은 관람객이 몰릴 것 같지만, 사실 여행객들이 비행기를 타기 전 비교적 오래 머무는 곳이 에어 사이트라 더 많은 관람객이 전시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에어 사이트가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 곳이라 작품 설치 인력, 작가 모두 인천공항 직원의 인솔하에 움직여야 하는 등 처음 겪어보는 일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컨테이너 구조물부터 모니터까지 전시를 위해 필요한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이 들어갈 때마다 사전등록을 하고 확인받는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상상 이상의 과정을 경험했지만 인천공항 문화예술공항팀의 김지숙 과장님 덕분에 사고 없이 설치를 끝낼 수 있었고, 전시 기획자인 저와 참여작가님들 모두에게 특별한 경험이 됐습니다.”

남극이 가진 허구성과 실재성
<2048> 김세진 작가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영상 매체를 주요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해온 미디어 작가 김세진입니다. ‘우리는 왜 이동하는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회적 그리고 기후적인 환경으로부터의 대안적 삶의 지속성을 위한 적극적인 이동, 그리고 인류의 끊임없는 욕망을 가속화된 문명의 발달로 인한 ‘추방’과 같은 수동적 이동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작품을 통해 발표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빠른 속도의 이동과 현대를 지배하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한 소외와 고립의 현상을 역사와 생태의 흐름을 통해 시각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전시에서 선보인 <2048>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남극 세종기지에서 제작했던 3채널의 영상 설치작으로 여러 미술관과 영화제에서 선보였습니다. 세종기지에 머문 시간은 2주였지만, 사전에 조사한 남극 세종기지의 설립 배경, 다양한 규칙, 무엇보다 남극의 지리적 배경과 세종기지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 중 젊은 과학자의 희생에 관련된 이야기가 와닿았습니다. 남극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국제적인 정치, 경제 이권 개입의 논란과 개인의 작은 희생의 대비를 허구와 현실을 뒤섞은 작품으로 제작하고자 했습니다. 그 뒤에는 저녁 식사 때마다 있었던 다양한 국적과 연구 배경을 가진 과학자들 그리고 엔지니어들과의 현실적인 대화가 뒷받침돼 주었습니다. 바람이 심해 나갈 수 없었던 날을 제외하고 과학자들의 탐구 여정에 참여하고 카메라에 남극의 풍경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김세진 <204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김세진 <204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김세진 <204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Q.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남극이라는 미지의 공간을 실제로 방문하고 머물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아침 그날그날의 활동 범위를 조절하기 위해 풍선을 띄워 바람의 양을 측정했던 것, 남극에서 작물 재배가 가능하다면 화성에서도 가능하다며 상추를 길러내던 작은 컨테이너, 그리고 인터넷이 가능하던 현대적인 기지 내부의 편의시설처럼 인류가 지금껏 이뤄내 왔듯, 극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의지와 능력을 생각할 수 있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Q. 극지 레지던스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과학과 문명, 기술이 우리의 삶과 역사에 미친 다양한 인과관계에 대한 오랜 작가적 호기심과 그 결과로서 현대의 다양한 현상에 더욱 집중하게 됐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닥친 기후 위기의 원인과 이로 인한 인류의 고통, 불안정한 세계정세에 깊은 이해의 바탕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북극해에 비유한 영혼 불멸 사상
<파이돈> 손광주 작가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극, 실험, 다큐멘터리, 설치 등 다양한 형식을 아우르며 영화와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Q. 전시에서 선보인 <파이돈>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아라온호 항해기이자 낭독극의 형식을 빌린 <파이돈>은 기후 위기와 자원 개발의 각축장으로 사라짐의 위기에 처한 북극해의 현재를 ‘죽음이 철학적 삶의 완성’임을 논증한 소크라테스의 최후의 모습에 빗댄 작업입니다. 아라온호의 일상과 연구 활동, 그리고 북극해의 풍경을 순례와 전례, 그리고 묵상이라는 비가시적인 추도식의 장치로 재구성하고, 영혼 불멸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믿음을 과거를 근원적으로 반복하는 자연 풍경으로부터 시각적으로 논증하고자 했습니다.

손광주 <파이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손광주 <파이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손광주 <파이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Q.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아라온호에서의 생활은 지극히 단순합니다. 특히 제가 합류한 3항차는 일명 ‘얼음을 피해 다니는 항차’로 매일 아침 북극곰과 해빙 위에서 차 한 잔 나누며 지구온난화를 논하려던 계획은 일찌감치 어그러졌습니다. 덕분에 예술가와 과학자, 그리고 각 분야의 기술자(승조원)들이 함께 타고 있는 아라온호의 일상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빡빡하게 짜인 일정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연구원들과 승조원들이 작가인 저나 예술 작업을 대하는 경직된 태도가 인상적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들이 느끼는 괴리감을 <파이돈>에 날것 그대로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플라톤의 《파이돈》을 읽게 하는 것이었는데 작업에 흔쾌히 참여해 준 고마운 나의 배우들은 뜬금없이 제시되는 철학적인 구절을 읽으며,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작업 자체를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때론 경쟁이 붙기도 했습니다) 연구원들과 승조원들을 작업에 직접 참여시킴으로써 예술가와 비-예술가 사이의 거리감을 조금이라도 좁히는 데 일조했다고 나름대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Q. 극지 레지던스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경력이 오래된 박사님들과의 대화가 무척 유익했는데, 그들은 연구 활동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반면 작가인 제게 예술 작업이란 오히려 ‘질문을 찾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답이 존재하지 않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면 답이 너무 많거나 이질적이기도 하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에 수식이나 그래프로 표현될 수도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이것이 종종 실용적인 지식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예술을 멀리하는 이유가 되는데 이공계 출신으로 현재 작가 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으로서, 예술가가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더욱 세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태초의 자연이 간직한 신화적 이야기
<올드랜드2> 이정화 작가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2021년 북극 아라온호 승선 레지던스 참여 작가 이정화입니다. 기술과 문화, 그리고 환경에 따라 몸이 변하거나 통제력을 잃어가면서 마주하는 경험에 관심이 있습니다. 생태 리서치를 기반으로 ‘살아 있다’라는 유동성에 대해 입체∙설치 및 비디오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Q. 전시에서 선보인 <올드랜드2>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2022년 개인전 <올드랜드>에서 전시된 설치 영상작업으로 한번 마시면 죽기 전까지 아프지 않고 평생 32살로 살 수 있는 신비한 물을 찾아가는 가이드 영상입니다. 기후 위기로 사라지는 북극 해빙과 12세기에 유행한 편지에 착안했습니다. 12세기 젊어지는 샘물이 있는 자신의 왕국을 소개하는 에티오피아 왕, 프레스터 존(Prester John)의 편지가 유럽 전역에 가짜뉴스처럼 유행했습니다. 당시 유럽인들은 그 왕국을 찾아 신비한 힘을 갖기 위해 아프리카 해안 탐험 원정대를 꾸렸고, 이는 신항로 개척 시대를 열었습니다. 오늘날 줄어드는 해빙은 기후변화를 넘어 위기가 됐지만, 몇몇 국가들에는 오히려 기회가 되는 모양새입니다. 북극항로 개척에 촉각을 세우는 지금의 모습은 12세기 개척 시대와 묘하게 겹칩니다. <올드랜드2>에서 신북극 항로가 가져다주는 달콤한 청사진은 21세기판 존의 왕국이 됐고 반드시 가야만 하는 신비의 샘물에 관해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결코 다가갈 수 없는 끝나지 않는 욕망을 배에 싣고 소문만 무성한 그곳을 향해 무한대로 떠돌고 있습니다. 재미나게도 지구에서 장수 동물들은 대부분 가장 단단하고 오래된 북극 해빙 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올드랜드2> 화자는 정말로 그곳을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정화 <올드랜드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이정화 <올드랜드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이정화 <올드랜드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Q.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2021년 아라온호 승선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코로나19로 예정된 한 달이 아닌 85일간 배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승선자 전원이 한국에서 출발해 북극해를 보고 다시 한국에 도착하는 연구 항해였는데요. 덕분에 동해, 오호츠크해를 지나 베링해, 북극해로 이동하면서 보이는 바다의 변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라온호가 극지로 올라갈수록 해빙과 가까워질수록 바다는 마치 지구의 원형으로 회귀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따금 파도가 잔잔해지면 북극 바다는 마치 가상 세계의 디폴트 값에 가까워지는 듯했습니다. 아라온호가 만든 엔진 파도 외에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극지 바다는 고요하고 모든 것이 정지돼 보였습니다. 바람과 파도가 없는 바다의 표면은 말 그대로 3D 그래픽 같은 물성이었습니다. 끊임없이 펼쳐진 해빙도 인상적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나 외에 모든 것이 정지된 고요한 바다가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Q. 극지 레지던스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연구선에 승선하는 극지 레지던스는 일반 아트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달리 저를 제외한 모두가 극지 관련 연구자분들이었습니다. 연구를 위해 승선한 해양 과학자들과 교류를 통해, 미술과 과학의 교차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 분야별로 참관, 극지 환경에 대한 이해 및 자료 공유가 용이했습니다. 과학자로서 자신의 연구를 위해 질문을 만들고, 가설을 세우고, 증빙을 위한 실험과 샘플 채집 및 연구를 통해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을 보면서 미술작가로서의 생태 리서치의 방식을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프로젝트 참여 후, 기후 위기에 따른 시각과 접근 방식이 다양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전에 해보지 않았던 방식의 작업을 시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과학과 예술의 교차점을 말하다
<마음에 담아라> 홍기원 작가
Q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2022년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북극 3항차 탐사에 참여했고 영상과 설치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홍기원입니다.
Q. 전시에서 선보인 <마음에 담아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2022년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북극 3항차 탐사 참여 기간 제작된 3편의 영상입니다. 빙하 1cm에는 짧은 지구 역사 1,000년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고기후를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를 알 수 있고, 더 나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데요. ‘과학은 세상과 우리의 환경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혹은 ‘우리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책임연구원 홍종국 박사님은 온라인 회의에서 “3항차 주요 임무는 해수 수심별 메탄, 온도, 전기도 CTD 데이터 수집, 해저 시료 채취, 지열탐사, 지구물리탐사 등으로 이를 위해 얼음이 없는 지역으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전했는데요. 영상에 담고 싶었던 빙하 코어나 쇄빙, 백야 등은 3항차 탐사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을 승선 후 알게 됐습니다. 이에 홍종국 박사님은 “어떻게 보면 모든 게 처음부터 배부를 수 없는데,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마음에 많이 담아 오면 어떨까요?”라며 조언해 주셨습니다. 박사님의 이 말은 이번 프로젝트의 국문 제목이 됐습니다.

홍기원 <마음에 담아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홍기원 <마음에 담아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홍기원 <마음에 담아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진 : 안진우

미국의 미생물학자 블라디미르 비시니액(Wolf Vladmir Vishniac)은 12년간 ‘Wolf Trap’이라 명한 화성 미생물 실험 장치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만, 1971년 예산 감축으로 취소됩니다. 실망할 만도 한데 그는 지구상에서 화성과 가장 비슷한 환경인 남극의 건조 계곡에서 연구를 이어갑니다. 1973년 12월 10일 그는 실험표본을 가지러 벌더 산(Mount Baldr)으로 향합니다. 18시간 후 150m의 얼음 절벽에서 그의 시신이 굴러떨어졌습니다. ‘202 실험실 표본 수거. 1973년 12월 10일 22시 20분 토양 온도 영하 10도 대기 온도 여하 16도’ 이 숫자는 화성 여름의 전형적인 기온으로 이후, 그의 친구와 부인은 실험을 계속했고 다양한 미생물종들이 회수된 표본 모두에서 검출됩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영문 제목 ‘Wolf Trap’은 과학의 끊임없는 도전, 자유로운 실험 정신을 향하는데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서용재 책임연구원의 “과학자와 예술가는 유사한 부분은 두 부류 모두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다”라는 이야기와 오버랩됩니다.
3항차 탐사에는 극지연구소, MBARI (Monterey Bay Aquarium Research Institute), 미국해군연구소, 포스텍,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강원대학교, 경상대, 광주과기원, 울산과기원, 경상대 등 국내외 기관 연구원 44명이 참여해 밤낮으로 탐사를 진행했습니다. 국내 유일의 임채호 아이스파일럿, 공책을 끼고 아라온호 안을 바쁘게 오가던 MBARI 데이빗 카레스(David Caress) 연구원, 그리고 오랜 시간 극지에서 연구하고 있는 홍종국 책임연구원, 김영균 박사 등 연구원과 승조원의 모습을 3편의 영상에 나눠 담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극지를 닮은 지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결국 지구환경과 생존이다, 그들이 하는 연구는 수백 가지 중 하나의 작은 퍼즐일 것이고, 미래의 어느 기점에는 모든 것은 연결될 것이다’ 이렇게, 특수한 환경을 마주하는 연구원, 승조원, 그리고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사이언스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할지, 그 속에서 어떤 본질, 혜안을 찾을지 아직 측정하는 중입니다.
Q.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승선 전 했던 상상이 실제 아라온호와 극지 환경을 마주했을 때 매우 특별했습니다. 그 낯선 느낌이 오감을 매우 섬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라온호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아라온호 승선을 위해 많은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코로나19 음성 증명, 한국해양수산연수원 목포 분원에서 5일간 기초안전교육, 승선지 알래스카 최북단 바로우(Barrow)를 향한 긴 여행, 헬리콥터를 이용한 승선, 아라온호에서의 첫날 밤, 쾌적하고 안락한 침대, 아이스크림, 각종 첨단 장비를 이용한 탐사, 독특한 선내 문화, 불판 위 삼겹살과 소고기 BBQ, 과학자가 만드는 현란한 김치볶음밥, 24시간 어디서나 들려오는 잔잔한 아라온의 엔진음, 오로라, 고위도 빙하, 화이트 아웃… 북극의 망망대해를 홀로 탐사하는 아라온호에서 모든 것은 특별합니다.
Q. 극지 레지던스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2022년 9월 21일 탐사에서 돌아왔고, 한동안 좋은 꿈을 꾼 듯했습니다. 아직 그 시간을 작품에 천천히 녹여내는, 변화의 과정에 있는 동시에 이제 겨우 시작하는 느낌이 듭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레지던스 참여 이후 사이언스를 향한 나의 로맨티시즘이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강렬한 만큼 욕심도 큽니다. 예술과 과학이 가지고 있는 울림의 교차점을 어떻게 탐사해 나갈지 될지 그 변화가 설레고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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