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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와 확장을 거듭한
예술가의 본질과 정의에 관해

예술가의 사전적 의미는 ‘예술 작품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지만,
특별한 자격이나 기준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에치오 만치니는 오늘을 ‘모두가 디자인하는 시대’라고 했다.
모두가 자신이 입을 것, 먹을 것, 머물 곳을
예술적으로 만들고 드러내는 시대이니 과언은 아니다.
시대가 변하며 예술가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
그 역사적, 사회적 관점은 어디서 시작되고 어떻게 변화했는가?
글_한준(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들어가며
예술가는 누구인가? 이 질문 자체에서 이미 독자는 예술가를 정의하고, 예술가와 예술가가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간단하거나 쉬운 일이 아님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 예술가를 가장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예술을 하는 사람 혹은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다. 이 단순한 대답은 또 다른 질문들로 이어진다. 예술가가 하는 예술활동이란 무엇이며, 예술가가 만드는 예술 작품은 그것이 아닌 것과 어떻게 다른가? 이 질문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미학적 논의로 우리를 끌고 간다. 그리고 우리가 본래 출발한 질문의 답은 점점 더 미궁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예술가가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구성적이고 제도적인 접근으로부터 찾고자 한다. 구성적, 제도적 접근은 본질적, 자연적 접근과 대비된다. 예술, 예술 작품, 예술가의 불변적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고 시대, 사회, 문화, 제도에 따라 예술가의 존재 여부, 그 범위와 경계가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다.
일단 예술가에 대해 구성적, 제도적 접근을 취하면 예술가가 누구인가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연달아 제기된다. 예술가를 정의하는 사회적 범주는 언제부터 어떻게 존재했는가? 예술가를 일반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보는가? 예술을 일로, 예술가를 직업으로 본다면 어떻게 규정되는가? 예술가들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갖는 특징은 무엇이며 현대 사회에서 예술가의 규정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이 질문들은 추상적 본질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적 구체에 대한 질문이다. 이제부터 위의 질문에 대해 예술사와 예술사회학의 연구 성과들에 의존해서 답을 찾아보자.
Artisan에서 Artist로
예술가의 역사적 등장
예술가는 언제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가? 박물관에 가보면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작품 중에는 ‘작자 미상’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아 전시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누가 만든 것인지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영어 단어 ‘art’에는 기예와 예술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이 둘로부터 뛰어난 기예를 가진 장인을 의미하는 ‘artisan’과 미를 창조하는 예술가라는 의미의 ‘artist’가 파생됐다. 예술가의 등장은 주문에 따라 온갖 제약 속에서 물건을 만들던 장인이 자의식을 갖게 되고, 자유로운 창작을 할 수 있게 되며, 그에 따른 제대로 된 보상을 받게 되면서 자유로운 예술가로 뒤바뀌게 된 것이다.
예술사학자인 하우저(Arnold Hauser)와 사회학자 엘리아스(Norbert Elias)는 장인의 예술과 자유 예술가의 예술을 구분했다. 장인은 도제로서 수행하면서 기술을 배우고, 길드와 같은 공동체의 제약 아래 놓이며, 후원자나 주문자에 종속된 지위를 갖고, 후원자나 주문자가 원하는 물적 조건과 미적 규범에 따라 생산을 한다. 반면 예술가는 체계적인 학습과 훈련의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고, 길드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작품을 판매하며, 예술을 감상하는 애호가와 대등한 지위를 갖고, 자신이 가진 미적 취향과 영감을 표현하는 작품을 창작한다.
하우저는 자신의 대저인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에서 미술 분야에서 장인의 예술가로의 전환이 르네상스 시기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교황 바오로 3세가 시스틴 예배당에서 <최후의 심판>에 몰두해 있던 미켈란젤로를 길드로부터 해방했고, 예술의 후원자로 유명한 메디치 가문의 코지모 1세는 이후 모든 예술원의 효시가 되는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또한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에게 『위대한 예술가들의 생애(Le Vita De' Piu Eccellenti Architetti, Pittori, et scultori)』라는 집단 전기를 쓰게 했으며, 길드로부터 예술가를 해방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16세기 중반에서 후반에 걸쳐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15세기 무렵부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미술가들은 작품 속에 자기 모습을 포함하는 등 예술가로서의 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에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와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회화에 대한 이론을 체계화시켜 미술가의 훈련을 경험 위주에서 이론 기반으로 바꾸는 기초를 마련했다.

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 ⒸBeck

Le Vita De' Piu Eccellenti Architetti, Pittori, et scultoriLe Vita De' Piu Eccellenti Architetti, Pittori, et scultori ⒸWikipedia

엘리아스는 유작 『모차르트, 사회적 초상』에서 미술 분야에서 예술가의 등장이 16세기에 일어난 것과 달리 음악 분야는 18세기 후반에야 예술가로서의 자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모차르트였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성공이 아닌 실패의 사례이다. 어린 천재로 이름을 날리며 6살부터 유럽 순회 연주를 다닌 모차르트는 17세라는 젊은 나이에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궁정 음악가로 전격 채용됐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이 아닌 대주교가 요구하는 종교음악과 궁정음악만 작곡해야 했던 모차르트는 주종관계에 따른 수모와 예술적 갈증을 견디지 못하고 25세가 되던 1781년 잘츠부르크에서 벗어나 빈으로 향했다. 에스테르하지(Nikolaus I. Joseph Esterházy de Galantha) 후작 가문의 궁정 음악가로 평생을 보낸 선배 하이든과는 크게 대비되는 행보였다. 빈에서 모차르트는 종교음악이 아닌 오페라와 연주용 음악 작곡에 몰두하지만, 가난과 과로로 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장인에서 벗어나 예술가가 되고자 했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한 모차르트의 뒤를 이어 예술가로서의 음악을 완성한 것은 바로 베토벤이었다.
『예술의 발명(The Invention of Art)』을 쓴 역사가 래리 샤이너(Larry E. Shiner)는 16세기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성취는 개인적으로 거둔 것이며, 여전히 보편적 범주로서 예술가의 등장은 이뤄지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적 범주로서 예술가의 전면적 등장은 예술 아카데미가 유럽 곳곳에 설립되고, 출판과 전시를 통해 예술 작품의 시장이 형성되면서 예술가들이 경제적으로 독립적이고 사회적으로 자율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된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에 일어났다. 문학 분야에서 그 대표적인 예는 영국의 존슨(Samuel Johnson), 프랑스의 볼테르(Voltaire), 독일의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이며, 미술 분야에서는 스페인의 고야(Francisco Goya), 영국의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프랑스의 다비드(Jacques-Louis David) 등이다. 음악 분야는 앞에서 본 것처럼 베토벤이 가장 대표적이다.
예술가를 향한 낭만주의적 환상
예술가의 사회적 등장과 함께 예술가를 향한 낭만주의적 환상 또한 만들어졌다. 음악에서 베토벤이 낭만적 환상을 대표한다면 미술에서는 고흐(Vincent van Gogh)가 대표적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니히(Nathalie Heinich)는 『반 고흐 효과』에서 고흐의 불멸의 명성이 사후에 만들어지는 과정을 분석했다. 그녀는 고흐가 생전에 고난과 멸시를 받고, 사후에 복권돼 숭배의 대상이 되고, 삶의 흔적은 순례의 장소가 되는 과정이 기독교에서 예수의 부활과 신성화 과정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세속화된 세상에서 숭배의 대상이 종교로부터 예술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19세기 낭만주의가 만들어낸 예술가의 낭만적 관점에서는 예술가의 천재성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니체의 말대로 신이 죽어버린 세상에서 초인으로서 예술가의 초월적이고 비범한 능력과 기행을 일삼는 일상 문화의 당연시가 생겨났고 20세기까지 지속된 것이다.

Artist ⒸTracey Moffatt

이러한 예술가를 향한 낭만적 환상 혹은 일상적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호주의 미술가이자 영화감독인 트레이시 모팻(Tracey Moffatt)이 1999년 발표한 10분짜리 단편 영화 <예술가(Artist)>이다. 그녀는 대중문화인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예술가가 등장하는 모습과 장면, 예술가에 대한 등장인물의 반응을 모자이크 형태로 짜깁기해서 보여준다. 예술가를 독특하고 특별한 기인처럼 취급하는 사람들의 반응이나 이들을 비현실적이고 사회적 통념을 따르지 않는 존재로 여기는 다양한 장면이 등장한다. 또한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소통과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더 심한 경우 자기 작품을 파괴하는 모습도 등장한다. 이러한 예술가의 현실 혹은 사회로부터의 거리는 아마도 20세기 아방가르드의 등장과 함께 더 심화했을 것이다. 예술가에 대한 복잡한 사회적 시선과 승자 독점적인 예술시장의 구조는 예술가들로 하여금 자신의 재능에 관한 타인들의 평가와 승인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일상적으로 안고 살아가도록 한다. 그 자신이 사진작가이기도 한 데이빗 베일리(David Bailey)가 쓴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Art and Fear)』란 책은 많은 예술가가 자신에 대해, 또한 주변의 예술가들이나 청중, 관객, 독자들에게 갖는 두려움과 불안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과 직업으로서 예술가
이제 일과 직업으로서 예술가는 어떻게 규정되고, 어떤 특징을 갖는지 살펴보자. 사회학의 통상적인 직업 분류에 따르면 예술가는 전문직에 해당한다. 물질적 생산을 하는 생산직이나 사무실에서 서류 업무를 하는 사무직과 관리직,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며 일을 하는 판매직 혹은 서비스직과 달리 전문직으로서 예술가는 상징적 생산을 하고, 고도의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어려운 선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법률가가 정의라는 가치를, 연구자가 진리라는 가치를, 의사와 간호사가 생명이라는 가치를 다룬다면, 예술가는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다룬다. 앞서 살펴본 예술가 이전의 장인이 숙련 생산직에 가깝다면 창의성을 인정받은 예술가는 전문직이 된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전문직과 예술가 사이에 차이점 또한 존재한다. 법률가나 의사, 간호사, 회계사, 교수 등 많은 전문직이 자격을 취득해야 전문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예술가는 그렇지 않다. 법률가, 의사, 회계사 등은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어려운 지식을 습득하고 실습을 거쳐 자격을 얻는다. 물론 자격증이라는 전문직으로의 진입장벽에 대해 이권을 독점하고 권력을 확보하는 장치라고 비판하는 입장도 있다. 기능적 중요성 때문이건 독점과 권력 때문이건 다른 전문직들이 자격증에 의해 외부로부터의 경쟁이나 도전으로부터 보호받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경우 상대적으로 이러한 보호장치가 취약하다.
물론 예술에도 음악의 콩쿠르, 문학의 추천이나 신춘문예, 미술의 전람회 등 이른바 예술가로의 등단을 위한 선발제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등단한 뒤 안정적인 예술활동의 기회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선발 과정을 거쳐 정식 등단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예술가로 활동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고 정식 자격증을 갖지 않고 활동한다고 해서 법과 제도에 의해 처벌받지도 않는다. 그렇게 보면 예술가는 가장 제도화의 정도가 약한 전문직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예술가는 다른 전문직들에 비해 제도화의 정도가 약할까? 예술 분야가 법, 의료, 학술 등 다른 전문 분야에 비해 덜 전문적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예술가의 모호한 정체성과 경계
전문지식에 대한 교육, 전문가 협회를 통한 조직화, 자격에 대한 검증과 자격증 부여와 같은 전형적인 전문직의 제도화 과정은 해당 전문지식에 대한 높은 수준의 합의와 표준화에 근거한다. 그에 비해 학술이나 예술 분야는 기존의 지식이나 관행에 도전하는 것을 당연시할 뿐만 아니라 권장하며 그 정도는 학술에 비해 예술이 더 강하다. 특히 아방가르드 이후에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도전까지 예술로 받아들이게 됐다. 대표적인 예로 외부자 예술,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가 있다. 기존 예술계에서는 예술로 인정하지 않던 것들이 예술로 받아들여지게 된 경우가 20세기 들어 늘고 있다. 정신적 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이 그린 그림이나 정규 예술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스스로 배우거나 노력해서 만든 작품에서 새로운 미적 혁신을 발견하는 경우들이 대표적이다.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Howard S. Becker)는 이러한 외부자 예술의 주인공들을 ‘천진난만한 예술가(Naive Artist)’라고 불렀다. 기존 예술 전통이나 관행의 혜택을 받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처럼 전문직으로 분류되면서도 경계가 폐쇄적이지 않은 특성을 갖는 것이 예술가이다. 1985년부터 컬럼비아 대학교 문화예술연구센터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논문에서 조안 제프리(Joan Jeffrey)와 로버트 그린블랫(Robert Greenblatt)은 현대 사회에서 예술가에 대한 규정이 대체로 세 종류가 있다고 요약했다. 첫째는 시장의 규정에 따라 예술활동으로 이익을 얻는 경우이며, 둘째는 교육과 단체 가입 규정에 따라 예술 교육을 받거나 협회에 가입된 경우이다. 마지막은 자기 스스로와 주변 동료에 따른 규정인데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거나 주변에서 그렇다고 간주하는 경우이다.
앞서 본 것처럼 예술가의 정의와 경계는 대체로 모호한 경우도 많지만, 만약 예술가에 대한 인정이나 승인 여부가 실제로 중요한 결과를 낳는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경우가 예술가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뉴딜 과정에서 공공근로의 일환으로 ‘연방 예술 프로젝트(Federal project number one)’가 실시돼 문학, 미술, 음악, 연극 등에서 공공예술 활동을 하는 경우 공공지원이 이뤄졌다. 최근 한국에서도 예술인복지법에 따라 유사하게 활동 중인 예술가에게 공공지원을 시도하면서 그 혜택의 수급 대상자를 정하는 문제가 중요해졌다. 대체로 이런 경우에는 앞서 예술가의 세 규정 중에서 가장 첫 번째, 즉 수익을 위한 작품활동 유무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연방 예술 프로젝트 포스터, 1936 ⒸWPA

연방 예술 프로젝트 포스터, 1936 ⒸWPA

예술은 무엇이며, 예술가는 누구인가?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정의는 계속 바뀌어 왔으며 현재 우리의 정의(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또한 곧 바뀔 수 있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정의하는 문장들은 지난 시대의 기록을 손끝으로 따라 읽는 정도일 것이다. 지금도 디지털 플랫폼과 인공지능의 도래는 예술과 예술가의 정의에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만약 예술가들이 자신에게 붙일 라벨을 선택할 수 있다면, 대부분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벤 샨(Ben Shahn)의 말처럼 정의 안에 의미를 담을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한준
한준(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한국사회과학자료원 원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하버드-옌칭연구소 방문학자, 한국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사회 안의 조직, 조직 안의 사회』, 공역서로 『예술사회학』이 있으며,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 한국에서 예술계가 형성·발전된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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