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출판 저작권 에이전트 이구용’
‘출판 저작권 에이전트 이구용’
한국문학을 비롯한 한국 출판 저작물을 글로벌 출판시장으로 수출하는 출판 저작권 에이전트로서 30년째 일하고 있다.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1990년대까지도 한국에 대한 인지도는 여전히 낮았다. 특히 영미권을 비롯한 해외 출판 시장에서 한국문학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한국문학의 수출을 시도했으나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좋은 작품을 소개해도 해외 출판사에서는 아예 답변도 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영미권에서 한국어 번역 판권을 열심히 수입하며 수출을 위한 노하우와 전략을 나름대로 축적해 왔고, 해외 문학시장에 대한 이해와 수요 파악을 위해 각국 주요 작가들의 목록을 만들어 그들의 작품을 열심히 읽었다. 동시에 해외 출판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한국문학 작품을 확보해 나갔다.
2005년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시작으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한강의 <채식주의자>, 편혜영의 <홀>, 손원평의 <아몬드>,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개성을 지닌 수많은 한국문학이 해외로 진출했다.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문학의 위상은 20년이 흐르는 동안 크게 달라졌고 이제는 그 위상을 한국 독자는 물론이고 전 세계 독자도 공감하는 시절을 맞고 있다. 2005년, 필자가 국내 에이전트로서는 처음으로 한국 문학작품을 영미권으로 수출했을 때, 필자가 수출한 <엄마를 부탁해>를 통해 신경숙 작가가 2012년 ‘맨아시아문학상(Man Asian Literary Prize)'을 받았을 때, 그리고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가 일본에서 ‘서점대상(本屋大賞)’을 받았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글로벌 출판 시장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과거에 비해 크게 성장했고, 현지 출판 시장에서의 성과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한국문학을 소개하던 초창기에는 해외에서 시큰둥한 반응만 보였지만 이제는 관심 있는 작가나 작품을 먼저 골라서 연락을 해오거나,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한다. <엄마를 부탁해>는 2011년 4월에 미국과 영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미국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최근에는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이 ‘힐링 소설(Korean healing novel)’이란 별명을 얻으며 여러 언어권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는 작고한 근현대 한국 문인의 좋은 작품도 발굴해서 해외에 소개하고 싶다. 한국 ‘문학 유산’이 풍성하다는 것과, 한국 역사와 철학에 대한 폭넓은 사유가 그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다. 또 한국문학을 원작으로 TV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형태의 문화콘텐츠가 제작되어 글로벌 문화 시장에서 더 많은 독자와 관객들을 만났으면 하는 꿈을 품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에서의 노력과 함께 정책적 차원에서 관련 부처의 관심과 현실적인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뮤지컬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가교를 놓는
‘공연 코디네이터 타카하라 요코’
‘공연 코디네이터 타카하라 요코’
영단어 코디네이터(Coordinator)에는 “무언가를 조정하거나 통합하여 하나의 성과를 도출한다.”라는 의미가 있다. 나는 공연 코디네이터로서 한국과 일본의 작품을 소개하고, 한일 배우들이 상호 교류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조정하여 한일 양국의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통역과 번역을 비롯해 작품의 매입 계약, 회의 조정, 시장 조사, 트렌드 파악, 보고서 작성까지 다양한 일을 수행한다. 또한 한국 창작뮤지컬을 번역해 일본 제작사와 미디어에 소개하고, 일본 배우가 한국의 뮤지컬 워크숍에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처음으로 한일 공연 교류에 참여하기 시작한 때는 201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한류의 붐이 크게 일었고, 한국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뮤지컬에 출연하면서 한국 뮤지컬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당시 나는 서울에서 치과 마케팅 일을 하면서 블로그를 통해 한국 뮤지컬과 배우들을 일본 관객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관객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파워 블로거가 되었고, 일본 제작사에서 “대학로에서 유행하는 작품, 한국 뮤지컬의 트렌드를 알려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본어와 영어, 한국어에 모두 능했기 때문에 브로드웨이와 한국, 일본을 잇는 비즈니스에 수월하게 참여할 수 있었다.
한국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출연하는 뮤지컬이 일본에 진출하는 사례는 줄어들었지만, 한국 뮤지컬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높아졌다. <스모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나빌레라>, <전설의 리틀 농구단> 등 한국의 우수한 뮤지컬을 라이선스 형태로 일본에 판매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한국 제작사가 일본에 직접 가서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대본과 음악 등만 판매하는 스몰 라이선스(Small License) 방식이 일반적이다 보니 현지화 과정은 필수적이다. 이때 코디네이터로서 한일 제작사의 요구를 잘 조율하는 일이 중요하다. 일본 제작사는 한국 특유의 표현과 정서를 일본 관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바꾸기를 원한다. 일본 창작진의 이런 아이디어를 한국의 원작자에게 전달하고 섬세하게 조율하는데, 이 과정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는지에 따라 일본 초연의 성공 여부가 크게 좌우된다.
한국과 일본 뮤지컬 배우들의 인적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뮤지컬 배우 양준모가 일본 대형 제작사 ‘토호(東寶)’의 <레미제라블> 장발장 역에 도전할 때 오디션부터 계약, 홍보 활동을 모두 일체를 대리했고, 뮤지컬 배우 김수하가 <미스 사이공> 킴 역에 지원할 때도 도왔다. 김수하 배우가 오디션 과정에서 캐머런 매킨토시(Cameron Mackintosh)의 눈에 띄어 일본보다 먼저 영국 무대에 데뷔하게 됐을 때는 영국 활동을 돕기도 했다.
2023년은 한일 뮤지컬 교류가 크게 진일보한 해다. <마리 퀴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전설의 리틀 농구단> 등 한국에서 검증받은 양질의 작품이 일본의 연출과 배우들에 의해 더 발전적인 작품으로 현지화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주로 중국에서 이루어졌던 한국 뮤지컬의 글로벌 유통 사업인 ‘K-뮤지컬 로드쇼’가 도쿄 중심지인 유라쿠조에서 개최됐다. 토호와 시키(四季), 호리프로(ホリプロ), 다카라즈카(寶塚) 등 일본을 대표하는 제작사의 프로듀서들을 포함해 약 100여 명의 일본 프로듀서가 참여해 성황리에 행사가 마무리되었고, 한국 뮤지컬에 대한 일본 공연계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한일 간의 공연 교류는 점점 확대되고 활발해질 전망이다. 올해만 해도 필자가 참여한 뮤지컬 5편이 일본에서 공연된다. 연말에는 한일 제작사와 창작자가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한국 뮤지컬 작품을 일본에 소개하고 수출했다면 올해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2.5차원 뮤지컬’을 한국 시장에 소개할 기회가 생길 것 같다.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인 <진격의 거인>, <주술회전>, <귀멸의 칼날> 등을 원작으로 한 2.5차원 뮤지컬은 일본에서 약 230억 엔(약 2,057억 원) 규모의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배우뿐만 아니라 한국의 뮤지컬 창작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만큼, 한국 창작진이 일본 뮤지컬에 참여하거나 반대의 경우도 발생하는 등 다양한 협업과 교류가 이루어질 것이다.
미술관의 다양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미술관 펀드레이저 이지현’
‘미술관 펀드레이저 이지현’
펀드레이저(fundraiser)란 한 기관의 운영 자금을 모집하는 일, 곧 펀드레이징(fundraising)을 하는 사람이다. 필자는 미국에서 미술사와 예술비평 이론을 공부했기 때문에 커리어 초반에는 한국과 한국의 디아스포라 미술을 더 잘 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시와 기획 분야에서 일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높은 수준의 전시를 기획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높은 수준의 전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서는 주최 기관의 재정 상태가 탄탄하게 유지돼야 했고, 외부 후원이 매끄럽게 이루어져야 했다. 그때부터 기금 모금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지금은 뉴욕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의 리서치 팀에서 펀드레이저로 일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과 미술작품이 있는 뉴욕에서 미술관 후원자와 펀드레이저는 대부분 백인이고, 동양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사실도 이 분야에 도전하게 한 동기 중 하나였다.
뉴욕현대미술관 외관 Ⓒ뉴욕현대미술관
요즘 미국의 미술관들에서는 DEAI(Diversity, Equity, Accessibility, Inclusion)정책, 곧 다양성, 형평성, 접근성, 포용성을 강조하는 정책이 큰 화두가 되고 있다. 백인 남성주의 예술에서 벗어나 더 폭넓은 예술을 선보이거나, 대중과 소통하며 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아올 수 있도록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필자는 남미계 예술을 지원하는 ‘라틴아메리카·카리브 펀드(Latin American and Caribbean Fund)’, ‘흑인 예술 위원회(Black Arts Council)’ 등의 후원자 후보를 리서치하는 일을 진행해왔는데, 이 또한 DEAI 가치관에 부합하는 프로젝트다.
Excellence in DEAI ⒸAmerican Alliance of Museum
한국이나 유럽 미술관은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이 수입원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미국 미술관의 주된 수입원은 개인과 기업의 사적 후원금이다. 미국은 정부가 지원하는 미술관 보조금에 한계가 있고, 개인 단위의 후원에 대한 탄탄한 세제 혜택 및 활발한 기부 문화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미국의 후원자는 미술관의 소장 작품 취득 및 운영에 관한 의사 결정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술관 직원뿐만 아니라 후원자와 컬렉터도 다양해져야 그들이 후원하는 다양한 배경의 작가들이 주목받을 수 있고, 그 작가들의 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되어 전시되고 연구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국내외 미술관 전시를 활발하게 후원하고 있고 미술관, 아트페어 등과 협업하는 브랜드도 많다. 하지만 한국 미술계에서는 정부 기금을 제외하면 개인 단위의 기부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펀드레이저도 찾아보기 어렵다. 필자가 아는 바로는 한국의 국공립·사립 미술관의 개인 단위의 후원자와 작품 기증자를 전담하는 직원은 거의 없거나 극소수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빈부 격차와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만큼, 사적 재산의 사회 환원 및 공공 이익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이러한 사회 변화에 발맞춰 한국 예술계도 어떤 방식으로 작가를 양성하고 물질적으로 후원할지 고민을 계속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정부의 보조금에 크게 의지하고 있는 현재 한국 예술계 시스템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작가와 큐레이터가 지원서와 결과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또 정책이 바뀔 때마다 변화하는 정책을 따라가는 것도 예술인에게 혼동과 부담을 준다. 정책입안자는 지원금뿐만 아니라 예술과 관련된 세금 혜택 정책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미술관의 문턱을 낮춰 사회 구성원 모두가 예술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펀드레이저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점차 예술·교육 및 다양한 공적 영역의 후원자가 늘어나기를 바라며, 물질적 자원이 가장 필요한 곳에 적합하게 쓰이며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 또한 현지에서 활동하는 동양계 예술계 종사자에게 미술 비평가를 소개해 준다거나 멘토링, 비자 서류 준비 등 비물질적인 자원도 지원하며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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