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와 고립의 심화
지역의 위기가 찾아오다
지역의 위기가 찾아오다
지역엔 사람이 없다. 끊임없이 지역을 떠날 기회만 찾는 청년들만 있을 뿐이다. 세대 간 일거리와 활동 영역을 놓고 보이지 않는 경쟁은 치열하다. ‘관계인구’와 ‘생활인구’를 이야기하지만, 지역은 사람을 뺏고 뺏기는 제로섬(zero-sum) 게임의 늪에 빠진다. 도전하고 실패할 사람도 지역에는 없다. 책임을 지는 사람 역시 없다. 갈등과 불평등의 심화, 사회적 고립감은 인구 감소의 위기를 맞은 지역에서 더욱 증폭된다. 어디든 각자도생의 시대, 사람이 귀한 시대다.
문화로 여는 지방시대
지역문화정책의 기조와 방향
지역문화정책의 기조와 방향
정부는 인구절벽과 지역 소멸 문제를 문화예술로 해결하겠다는 국정 과제 아래에 지역 간 문화 격차, 획일화, 지방 소멸 등을 키워드로 정책환경을 분석해 2023년 3월에 ‘문화로 여는 지방시대, 지역문화정책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지역균형, 지역매력, 지역활력 등 3가지를 축으로 ① 대한민국 어디서나 자유롭고 공정한 문화누림, ② 지역 고유의 문화매력 발굴·확산, ③ 문화를 통한 지역자립과 발전 등 3대 전략과 11개의 추진과제를 통해 “함께 누리는 문화, 문화로 매력있는 지역”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어 2023년 4월에는 제2차 문화진흥기본계획으로 “자유와 연대의 날개를 단 K-컬처, 그 새로운 5년을 디자인하다”를 발표했다. 지역 관점에서는 ‘지역과 사회를 품격 있게 연결하는 K-컬처’ 전략 아래 모두가 누리는 문화, 문화다양성 기반 연대, 문화로 연결하는 사회, 문화를 통한 사회문제 해결과 회복탄력성 등의 의제를 제시하였다.
이어 2023년 6월에는 지역 중심 문화균형발전 선도 사업으로 기존에 진행되던 5차 문화도시 선정을 중단하고 ‘대한민국 문화도시 추진전략 및 지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리고 지역 문화 대상도 확대·개편하여 지역을 대표하는 유무형 문화자원을 선정하여 포상하며 홍보를 지원하는 ‘로컬100’ 공모사업을 이어갔다. 2023년 10월에 문화체육관광부에 유인촌 장관이 취임한 후, 문화예술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현장을 방문한 결과를 바탕으로 12월에는 ‘최고의 예술, 모두의 문화’를 위한 문화예술 3대 혁신전략과 10대 핵심과제를 발표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인 ‘지방시대 실현’이라는 국정 기조에 맞춰 제2차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과의 연계성을 유지하면서 정책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으로 평가된다. 문화예술정책의 구조와 지원체계의 재편은 오랜 시간 제기되어왔던 부분이므로 이러한 정책의 효과성이 발휘된다면 그 결과에 따라서 지역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국민의 문화복지 측면에서 사회적 약자(장애인, 다문화, 청년)를 고려하고 문화환경 취약지역에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는 점도 긍정적이다.
지역 관점에서는 ‘지역 대표 예술단체의 육성’, ‘구석구석 문화배달 사업’, ‘대한민국 문화도시 육성’, ‘로컬100’ 확산, ‘권역별 문화예술 거점 인프라 조성’ 등이 눈에 띈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설립과 출범이 이어지고 있는 지역문화재단 등을 포함한 문화예술 지원기관의 역할을 재정립하여 정책 구조를 혁신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주목하게 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장기적 관점보다는 사업의 실행에, 과정보다는 성과에, 활동보다는 산업에 중점을 두고 이뤄진 변화가 아닐까 싶다.
담론이 사라진 시대
부유(浮游)하는 지역문화
부유(浮游)하는 지역문화
지역문화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역문화정책에서 무엇이 중요할까?’라고 자문해 보면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획자, 예술가, 활동가, 문화예술단체의 대표들, 재단 종사자, 문화도시 담당자 등도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지역문화 현장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담론이 사라졌다. 협의와 과정이 사라졌다. 지원사업도 사라지고 예산도 사라졌다. 주민과 시민을 위한 활동은 더 지속하기가 어려워졌다. 생활문화센터와 같은 공간의 운영도 힘들어졌다. 특히 사람을 키울 예산이 없다.”
올해는 「지역문화진흥법」을 근거로 지정한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기관과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사업의 예산이 사라졌다. 문화예술교육의 지역화 사업도 사라졌다. 작은 예산에 기대어 지역 스스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사업은 모두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은 2023년 대비 3.5% 증가했다고 했는데, 그나마 조금이라도 있었던 지역문화 예산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안 관련 보도자료를 보면 콘텐츠와 관광 그리고 ‘최고의 예술, 모두의 문화 – 문화예술 3대 전략, 10대 핵심과제’와 연계된 사업에 예산이 증액되거나 신규 배정된 것이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지역의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지역문화는 지역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지역 스스로 자율성을 가지고 세세한 정책을 만들어 가라는 뜻일 테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의 공모를 통한 정책 드라이브와 예산 그리고 여기에 기대어 왔던 지역이 이제 스스로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확보하기에는 아직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지역 정치의 관심사와 재정의 순위에서도 문화는 후순위다. 지역이 준비할 새도 없이 사라진 예산은 지역문화예술단체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매년 1분기는 문화예술단체의 보릿고개다. 그리고 지금 역대 가장 크고 험한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고 문화예술단체들은 말한다.
2024년은 「지역문화진흥법」 시행 1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에 다양한 문화 매개자와 전문 인력 등을 키우며 생활문화의 기반을 조성・확장하고 각 지역이 문화도시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해 가는 과정에 있다. 물론 「지역문화진흥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중요한 이슈다. 그런데 일부 법에서 지정하고 법에 근거해 착수한 사업의 예산은 사라졌다. 지역문화정책의 흐름에서 지역을 바라보는 철학이 부재한 것도 지역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있다. 언어에는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가 담긴다. ‘지역’은 ‘지방’으로 다시 ‘로컬’로 대상화 된다. 대상화로 인해 벌어진 이후의 문제는 바로 담론의 소멸이다. 지역문화를 논하는 공론장은 사라졌다. 사람들과 담당자 모두 진심이었던 사업의 과정과 결과를 논할 때도 사회적·경제적 효과 중에서 경제적 효과에 대한 강박증만 남았다.
‘최고의 예술, 모두의 문화’
그리고 지역 조망
그리고 지역 조망
‘문화예술 3대 전략과 10대 핵심과제’ 중 지역과 연결된 사업들이 모두 지역에 필요한 사업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정책이 풍선효과1를 유발하지 않으려면 정책과 사업이 불러오거나 놓치고 있는 것 때문에 생긴 틈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하는 고민도 함께 나눴으면 한다.
지역의 대표 예술단체로 선정되면 20억 원이 지원된다. 그동안 지역의 예술인과 예술단체는 늘 지원 금액에 해당하는 예술작품으로 연명해 왔고 늘 지원 금액을 더 받아서 좀 더 큰 작품을, 좀 더 영향력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런 지역의 관점에서 20억 원은 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지원금이다. 그러나 이 사업을 바라보는 지역 예술단체의 셈은 복잡하다. 무언가 해볼 수 있는 기회는 반갑지만 과연 그 예산을 집행할 만큼의 역량과 실력이 있는 단체가 지역에 있는지가 의문이며 이후에 그 예산이 사라지고 나면 더욱 크게 다가올 지역과 단체의 현실이 암담하다고 말한다. 지역을 대표할 10개의 단체도 중요하지만 지역문화예술의 다양성과 독특성을 담보할 100개, 1,000개의 문화예술단체에도 활동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지역은 서로의 합과 합이 만날 때, 더 큰 기회를 향해 헤쳐 나갈 힘이 모아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문화도시’ 13곳이 선정되었다. 그중 현재 전담 조직이 구성되어 활동이 가시화된 도시는 3곳 내외다. 올해가 준비 기간이라고 하지만 기존 제1~4차 문화도시에 선정된 도시들도 긴 준비 기간을 보냈음에도 본 사업이 시작되자 대부분 어려움을 겪었다. 더구나 문화도시를 만들어 갈 다양한 주체들과 워킹그룹(Working Group)이 서로의 생각과 방향을 협의하고 합의하는 과정도 없었다. 결과와 빠른 성과가 중요한 사업에서는 그 무엇보다 전담 조직과 사업 담당자의 역량과 실력을 필요로 한다. 광역형 선도 모델도 인근 도시와의 수많은 논의와 협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형식적으로 흘러갈 것이다.
우리가 목도한 바로는 지역에서 실패한 정책은 대부분 거창한 계획만 있었고 그 계획을 현장에서 실행으로 담보하는 사람이 없었다. 반면 대부분의 성공 사례를 분석해 보면 그 지역에는 사람이 있었다. 사업의 정확한 목적과 목표를 인지하고 정책사업을 통해 그 지역에 어떤 기회를 만들어 내는 역량과 태도를 갖춘 사람 말이다. 그런 역량 있는 사람이 결국 사업도 예산도 만들어 내며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창출한다. 앞서 시작되어 진행 중인 문화도시 24곳의 과정에서 도출된 성공과 실패의 요인을 잘 참고해야 한다.
‘로컬100이 보여주고자 하는 지역 매력은 문화 관광지와는 어떻게 차별화되는가? 이미 어느 정도 인지도를 확보하여 방문객을 끌어당기고 있는 콘텐츠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역으로 관심을 이끌고 전 국민이 그것을 계기로 그 지역에 가고, 머물고, 살고 싶도록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만 지역의 대표적인 유무형 문화자원을 선정하는 기준과 가치에는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권역별 문화예술 거점 인프라 조성’ 사업은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계획이 대도시와 박물관에 집중된 느낌이다. 그곳에 지역주민은 몇 번이나 갈까? 그보다는 (이제는 예산이 끊겼지만) 지금까지 만들어 온 생활권 단위의 문화예술 활동 거점이 더 소중할 수 있다. 그러한 작은 공간에도 온기가 돌 수 있도록 지원의 폭을 넓혀 주었으면 한다.
아울러 지역문화재단의 역할 확대와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중앙 정부와 지역문화재단이 함께 힘쓸 보편적 문화정책은 비전과 방향을 맞추고 서로의 역할을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각 지역의 고유성·정체성·특성화를 강화하며 지역의 매력을 발산할 정책과 사업을 지역 스스로 발굴・기획・실행하는 지역에는 인센티브와 각종 혜택을 주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사람의 발견과 성장의 과정을 만드는
지역문화정책을 바라며
지역문화정책을 바라며
로컬의 근간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활동한다. 그 활동이 다른 활동을 부른다.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하며 서로의 취미와 취향, 경험과 활동을 공유하고 연결한다. 이러한 활동은 시민의 자발성과 참여에 기반하여 다시 커뮤니티에서 취향과 이야기 공동체로 발화한다.
문화를 산업으로 바라보고 그 결과가 지역에 남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문화산업만큼 사람의 창의성과 활동의 결과에 기대는 산업이 있을까? 문화산업이 잘 성장하려면 다양한 시민의 문화, 취미, 여가 활동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문화예술 생태계의 기반이자 다양성의 근간이 되는 예술가, 기획자, 활동가 등 비영리 주체의 활동과 성장도 중요하다. 이들의 활동을 담아낼 공간과 성장을 위한 사업 역시 중요하다. 그러한 공간과 사업을 통해 지역에 꼭 필요한 ‘사람’이 성장한다.
그동안 지역문화 현장에서 일하면서 경험한 바로는, 문화에서 중요한 건 속도와 물량이 아니었다. 문화정책의 방향성, 그리고 실제로 지역문화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풍부한 경험과 진심 어린 태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 진심을 담고 있는 사람이 핵심이다. 정부와 행정이 주도하는 지역문화정책은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가 지역을 기억하고 지역에 다시 가야 할 이유에 사람만큼 강력한 다른 유인 요소가 있는가? 지역문화정책의 성공 여부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지역에 사람이 귀해진 시대다. 지역도 이제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중요하지만 그 지역을 사랑하고 그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도전하는 사람도 이제 정말 소중하다. 지역문화예술계도 가능성과 기회를 만드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지역문화예술의 확장과 성장, 지속성을 만드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력 있고 역량 있는 지역문화에 진심인 사람을 품고 키우자.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시대에 품이 넓은 지역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또 다른 좋은 사람을 불러들인다. 사람의 관점에서 우리의 지역과 지역문화정책도 근본적으로 다시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불룩하게 튀어나오는 것처럼, 어떤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다시 발생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특정 사안을 규제 등의 조치를 통해 억압하거나 금지하면 규제조치가 통하지 않는 또 다른 경로로 우회하여 유사한 문제를 일으키는 사회적 현상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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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특히 젊은이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곳이 지방인 것을 잘 피력했다. 제가 거주하는 홍성의 병원, 공연장, 지역 문화행사장 등에는 전부 노년층만이 행사를 주관, 참여함으로서 뜨거운 열기보다는 힘겨운 한숨과 행사의 조기종료만 바라는 열기(?)가 뜨거운 것을 볼 때 정부에서 내려오는 문화 관련 계획 등이 관계 공무원의 승진용 자료로만 활용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작년 12월 홍성이 문화도시로 선정되어 관계자들이 환호하고 군청을 비롯, 산하기관들의 청사에 축하 플래카드가 나부꼈지만 현재 지역주민이 피부적으로 와닿는 문화행사는 적은 편인 것 같다. 강승진 센터장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지역주민들과의 담론의 장이 더욱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며, 지역문화정책에도 거창한 구호성 계힉이 아닌 사람 냄새가 풀풀 풍기는 계획의 수립에 필요함을 인지하게 해 준 귀중한 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