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과 연결된 문화 활동
문화도시 영도
문화도시 영도
Q. ‘문화도시 영도’는 ‘도시 의제를 문화예술로 대응합니다’라는 미션 아래 문화 활동이 사회 정책으로 이어지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도시 의제와 문화예술의 연결을 생각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2020년 영도가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됐을 당시에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기획됐습니다. 쓰레기 섬을 재건해 자연과 예술의 섬으로 변화시킨 일본의 나오시마 섬처럼 예술을 통해 영도를 알리고 관광지로 발전시킬 계획이었죠. 사업 계획을 수립하기에 앞서 지역 주민의 의견을 듣는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했는데 벽화나 조형물을 세우는 공공예술을 영도 전역에 적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부산은 인구 약 350만 명, 자치구 16개를 가진 대도시지만 영도는 부산의 자치구 중 고령화율과 인구 소멸 위기가 가장 높은 지역입니다. 통학로가 불편해 전학을 가는 학생들이 많았고 청년들이 모일 만한 문화 공간이나 즐길 거리도 부족했어요. 독거 어르신들의 비중이 높은 문제도 있었죠. 해결해야 할 사안이 가득한데 여기서 ‘공공예술’을 한다고 하니 주민들에게는 한가하고 쓸데없는 일처럼 느껴진 거죠. 이후 사업의 미션을 ‘도시 의제를 문화 예술로 경영합니다’라고 새롭게 정의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고립감 완화, 교육 환경 개선, 청년 일거리 확대, 도시 이미지 다각화, 해양 생태 오염 대응이라는 5가지 핵심 의제를 정했습니다. 이 도시 문제들을 문화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저희의 추진 사업과 목표가 됐죠.
<문화도시 영도> 사업 비전 Ⓒ문화도시 영도
Q. ‘문화도시 영도’ 비전과 목표의 토대가 된 라운드 테이블 진행 시 가장 염두에 두는 사안은 무엇인가요?
라운드 테이블은 주민들로부터 영도에 대해 배우고 이 사업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자문받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목적은 ‘문화도시 영도’ 사업을 함께 추진할 좋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함이었어요. 대부분의 문화도시 사업은 도시적 관점에서 진행될 때가 많은데 그때 사업을 함께할 ‘핵심 주체’들이 꼭 필요합니다. 마을에 이미 만들어진 주민 공동체를 활용하면 쉽게 갈 수 있었지만, 사업이 5년간 진행되는 만큼 최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희 사업에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어린이, 청소년, 어르신부터 장애인, 수리 조선 노동자, 공무원, 탈북민 등 인구 대비 대표성을 신경 써서 매회 다른 분들과 라운드 테이블을 35회 진행했습니다. 매회 8명씩 약 300명의 주민을 만났는데 함께 의제를 논의한 만큼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도 강했어요. 무엇을 해달라고 요청하기보다는 저희 나름대로 구상한 ‘도시를 좋아지게 만들 방법들’을 공유했습니다. 그러면 누구보다 애향심이 강한 주민들 대부분이 돕고 싶다며 손을 내밀어주셨어요. 그런 분들을 찾아내 협업 파트너로 설정하면 갈등도 줄어들고 저희가 배우는 것도 많아요. 또한 좋은 사람들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로 연결되고 확장하며 건강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죠.
‘사업’이 아닌
‘일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방식’으로
Q. 지역문화 거버넌스를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오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많은 공공기관이 ‘거버넌스’를 하나의 사업으로 접근합니다. 규정된 것만 거버넌스 형태로 진행하고 나머지는 기존대로 이뤄지면서 거버넌스의 무용론, 비효율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거버넌스를 사업이 아닌 일하는 방식으로 보고 모든 일을 진행할 때 필수적으로 거버넌스를 거칩니다. 각 사업을 수행할 때 주요 협력 주체는 누구인지, 어떻게 협업할 것인지 먼저 계획해요. 이때 협력 주체는 이 문제에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들, ‘보람 공동체’로 구성됩니다. 한 번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통학로 사고가 자주 나는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학부모들과 자녀들이 함께 모여 통학로 안전에 관한 그림을 그리고 캠페인 일환으로 거리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저 우리 동네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내면 좋겠다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보람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이죠.
또 다른 사례는 ‘똑똑똑 예술가’인데, 혼자 살거나 거동이 불편한 주민에게 영도 안에서 활동하는 예술가가 찾아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예술 활동을 하는 사업입니다. 이 사업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똑똑똑 예술가’가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들이 참여해야 했어요. 독거 어르신, 한부모 가정, 조부모 가정 청소년, 탈시설 장애인 등 지역 주민들의 사정을 잘 아는 분이 필요해 통장, 반장님들을 찾아다니며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번거로운 절차였지만 단순한 사업 실행을 넘어 참여 주민과 예술가 사이에 끈끈한 유대감이 만들어졌어요. 참여자들 역시 저희의 협력 그룹이 되면서 또 하나의 네트워크로 발전했죠. 사업이 종료한 후에도 사업의 취지와 목적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협력 주체와 협력할 방안을 상세히 정하는 일은 꼭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2021 ‘똑똑똑 예술가’ 활동 모습 Ⓒ문화도시 영도
Q. 전문가 자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관행적 거버넌스, 시민을 단순한 향유자로 여기는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비평이 많습니다. 문화예술 거버넌스 발전을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거버넌스 실행 시 갈등은 상수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만큼 ‘트래픽’이 발생해요. 이런 문제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해체하면 갈등은 밖에서 터져 나옵니다. 그런 갈등 요소를 공론화하는 것이 거버넌스이자 건강한 의사 결정 과정이에요. 처음부터 사업의 방향을 정확하게 설정하고 공유해야 오해와 갈등을 줄일 수 있어요. 가령 지역의 유휴공간 활용 사업을 진행할 경우, 행정가와 예술가, 주민이 기대하는 바가 다릅니다. 거버넌스는 더디더라도 조정자와 참여자의 접점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대화가 원활히 진행되려면 같은 언어를 사용해야 해요. 어려운 행정 용어를 삶의 언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고 시민과 예술가의 눈높이에 맞게 전달해야 합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사람의 장점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저희 역시 라운드 테이블 과정에서 유난히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들의 강한 주장은 지역 사회에 대한 강한 애착 때문일 수 있어요. 각자가 지닌 생각이나 장점이 1이더라도 이를 함께 발전시켜 10, 20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저는 이 역량이 문화 기획자, 문화 관련 종사자들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해요.
내일의 일상을 바꾸는,
공동체를 위한 문화예술
공동체를 위한 문화예술
Q. 센터장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떻게 문화 기획자가 되셨는지 궁금해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2002년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학교사회복지사로 일했어요. 당시 학교에 무단결석자 수가 많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일상을 먼저 이해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각, 결석이 잦은 한 학생의 집에 방문해보니 한부모 가정으로 아버지가 일 때문에 집을 비울 때가 많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겉보기에는 문제가 많은 학생이지만, 그들의 장점을 찾고 보여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후 가정 방문 제도를 도입하고, 소위 ‘문제아’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축구 경기를 열고, 아이들의 예술적인 감각을 보여줄 수 있는 거리 전시회, 거리 공연을 기획해 매월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장기 결석자 수를 3분의 1로 줄일 수 있었어요. 문화예술로 공동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일찍이 경험하게 된 것이죠. 문화예술의 힘을 알게 된 그때의 경험은 제가 지금 하는 문화 다양성 사업, 문화 복지, 정책 설계의 비전과 여전히 닿아 있습니다.
Q. 문화 기획자로서 문화예술 정책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문화도시 영도’를 진행하며 수많은 사람과 만났지만, 가장 힘들었던 점은 평가 과정이었습니다. 문화도시 사업 심사 시 여전히 성과에 초점을 맞추고 문화와 사회를 명확히 구분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워요. 문화는 생활 양식이자 삶의 태도이기에 도시 문제와 떨어질 수 없습니다. 문화 정책과 사회 정책을 구분하지 말고 도시의 문제를 문화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으면 좋겠어요. 또한 문화 정책을 예술가, 문화 기획자, 기관에 한정 짓지 말고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과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도문화도시센터 직원들 아이크루 Ⓒ문화도시 영도
Q. 끝으로 ‘문화도시 영도’에서 더 이루고자 하는 가치, 그리고 문화 기획자이자 조직의 리더로서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지난 3년간 문화 기획자 양성 프로젝트 진행해왔고, 많은 분이 이를 고도화해 영도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커뮤니티를 만들고 제로 웨이스트 샵이나 채식 카페, 출판사 등 창업하는 분들도 늘면서 지역사회에 다양한 문화 공간이 생겨났어요. 느리지만 차근차근 저희가 목표했던 것들을 이뤄가는 것 같아 보람이 큽니다. 제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조직을 만들고 키우는 것보다 필요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영도문화도시센터 안에서는 역량 있는 크루원들이 훌륭한 문화 기획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 밖으로는 삶의 좋은 태도를 지닌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보람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금까지 보람 공동체를 찾고 그들의 경험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면 ‘문화도시 영도’가 절반을 지난 올해는 핵심 주체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권한과 역할을 이양하는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저희 조직의 사례가 문화기관의 일하는 방식과 환경을 개선하는 선례가 되길 바라요. 조직 리더로서 기획자로서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 매번 두 갈래의 길에서 제 역할을 고민할 때가 많은데, 고민만으로 끝나지 않고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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