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용과 유능의 사이에서
글의 논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말을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해 생각해보자. 하나는 ‘정부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행정학 흐름에서 신공공관리론의 평가와 갱신이라는 측면이다. 이 논의의 핵심은 ‘정부가 얼마나 유능할 수 있는가’라는 것인데, 이 ‘유능’을 측정할 수 있는 계량적 지표가 관건이 된다. 소위 시장적 방식을 공공 평가에 활용하는 이유는 측정할 수 있는 계량적 지표로서 경제적 지표가 가진 압도적 영향력 때문이다. 경제적 지표는 ‘계산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니는데, 단순히 얼마인지 뿐만 아니라 투입과 산출 간에 기계적인 연속성을 바탕으로 투입 대비 산출량의 향상을 유능으로 간주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최근에는 성과 관리도 지표 중심으로 달라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시계열적 평가를 위한 공통 지표의 적절성 자체에 의문이 생기고 있다(어떻게 2년 전에 타당했던 지표가 지금까지 같을 수 있는가). 이 때문에 좀 더 수행적 측면, 즉 투입과 산출이 아닌 기획과 평가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이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 기능이 유능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동일하다.
이와 다른 측면은 더욱 실용적인 질문으로 ‘정부의 효용’, 즉 ‘어떤 조건이라면 정책 소비자로서, 민주주의의 주권자로서,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만족할 것인가’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앞서 거버넌스 논의가 공급자 관점에 가깝다면 이번에는 수용자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만족감은 충족을 통해서 달성되는 것이지만 이해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100을 채워야 할 때 100이 제공되면 만족도가 채워지지만, 80이라고 하더라도 모두가 함께 80이거나, 아니면 나만 80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다. 다만 만족은 소비자 만족도와 같이 개인의 효용의 관점에서도 가능하지만, 타당성이라는 집합적인 합의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이를 지닌다.
유능한 정부 vs 문제 해결
정부의 ‘유능’에 초점을 맞춘 거버넌스와 정부의 ‘효용’에 초점을 맞춘 거버넌스는 모두 ‘행정’ 혹은 ‘정부 기구’를 상수로 하는 논의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그것을 정부 기구 내의 과정에 비중을 두는지 아니면 정부 기구와 시민 간의 관계에 비중을 두는지에 따라 다른 강조점을 지닌다. 예를 들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21년에 진행한 ‘예술지원정책에 대한 인식과 미래수요 설문조사 결과1’에 따르면, 공공이 예술을 지원할 때 우선시해야 할 가치에 대해 예술 작품의 우수성(41.8%)과 안정적인 창작 환경(41.5%)이 높은 응답을 보였다. 이러한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거버넌스가 필요할까. 여기에는 이론적인 분석이 아니라 경험적 사례가 중요하다. 정부의 유능에 초점을 맞춘다면 예술 작품의 우수성은 평가 제도의 개선으로, 안정적인 창작 환경은 투입 자원의 증대를 통해 해소하려고 할 것이다. 평가 과정에 광범위한 심사위원과 시민 평가단 구성, 당사자 평가를 도입할 수 있다. 안정적인 창작 환경이라면 기존 사업의 조정을 통해 선택과 집중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데, 과거에는 창작공간 조성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정기적인 현금 지급이 주로 논의된다. 논의 범위는 기존의 예술지원 정책을 넘어서지 않고 그 안에서의 조정과 재배치로 한정된다.
예술지원정책에 대한 인식과 미래수요 설문조사 결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그런데 예술인의 입장에서 보면 작품의 우수성에 대한 우선순위와 안정적인 창작 환경에 대한 우선순위가 분리되지 않는다. 우수한 작품에 대해 선택적으로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공공예술 지원의 원칙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안정적인 창작 환경 조성이 곧 우수한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로 이어지기도 한다. 즉 이 둘의 가치는 연속적인 가치이며 그 연속성은 원인과 결과의 과정일 수도 있고 장기와 단기의 차이거나 혹은 대상 범주의 측면에서 전체와 부분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접근에는 반드시 ‘정부의 바깥’에 대한 고민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작품의 우수성이나 안정적인 창작 환경은 정부의 기능만으로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효용에 초점을 맞추면 정부가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인식, 즉 경계의 인정이 전제돼야 한다. 만약 창작 환경의 안정성이 작품의 우수성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면 레지던시를 통해 집중적인 창작 환경을 제공하거나 지역별 창작공간을 제공해 발표의 자유를 강화할 수 있다.
또한 예술인 기본 소득과 같은 현금 지원을 통해 창작에 투여할 시간 자원을 보장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서 거버넌스는 레지던시나 창작공간 운영 방식에 대한 것과 더불어 예술인 기본 소득의 충분성에 기준을 두고 작동한다. 그리고 레지던시에 얼마나 많은 예술인이 참여했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예술 작품의 우수성을 유지하는데 어떻게 기여했는가로 평가할 수 있으며, 당연히 레지던시 정책의 외적 환경 역시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레지던시에 참여한 예술인들이 지역 사회의 자원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지, 혹은 주어진 시간 동안 천착해야 할 주제의 집중하기 위해 제공할 수 있었던 것들을 짚어볼 수 있다.
변화의 정당성을 확보할
정책 과제로서의 거버넌스
정책 과제로서의 거버넌스
제20대 정부는 정부 위원회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소위 ‘식물 위원회’, ‘유령 위원회’를 일괄 정비하기로 하고 각 정부 부처마다 30%를 할당해 위원회 정비를 요구했다. 2022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는 41%의 위원회를 정비할 것으로 발표하며 높은 실적을 보였다. 총 32개의 위원회를 가지고 있던 것에서 13개를 폐지, 19개의 위원회만 유지하기로 했다. 폐지된 위원회는 대부분 분야별 법률 제정에 따라 설치했던 법정 위원회이다. 대표적인 것이 공공디자인위원회, 만화진흥위원회, 문학진흥정책위원회, 문화예술교육지원위원회, 지역문화협력위원회로 각 위원회는 분야별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해 좀 더 현실에 부합하고 실질적인 정책 과제에 집중하기 위해 설립됐다. 제20대 정부는 이들 위원회를 폐지하는 대신 각 정부 부처마다 설치한 정책자문위원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개별 입법 과정에서 위원회를 관례처럼 설치해온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상기한 위원회가 설사 법정 위원회라 하더라도 그 기능과 역할에 있어 굳이 위원회라는 거버넌스 구조를 거쳐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문제는 거버넌스의 효용성 판단을 정부가 했다는 데 있다. 현행 거버넌스가 정부의 필요에 닿지 못한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해 존재한 것일까. 그나마 제도적 외피로서 위원회가 사라졌을 경우 그동안 감춰졌던 비공식적인 의견 수렴 절차의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즉 ‘정부의 유능함을 예술인들이 어떻게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제도를 경유한 것이 공적 신뢰의 최소 조건이라면 그것이 사라진 상태에서 공적 신뢰를 확보할 방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식물 위원회’ 논란은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거버넌스가 거추장스러운 제도의 과잉 포장처럼 느껴지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정부위원회 정비 방안 브리핑 Ⓒ행정안전부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낡은 캐비닛에 넣어 봉인하는 것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그러다 불현듯 마치 그것이 거기에 있었는지 몰랐다는 듯 꺼내 들고 호들갑 떠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애초에 이 문제를 발생시킨 정부의 변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문화예술 정책이 가진 보조금 의존 구조는 그런 전망을 어둡게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 지원사업 중 상당수는 보조 사업으로 집행되며, 문화예술 분야는 중앙정부 사업 중 특히 많은 민간 보조 사업자를 가진다. 형식적인 수평성을 만들어주는 거버넌스가 없다면 정책 대상으로서 정부와 예술인은 수직적인 관리 감독 기관과 보조 사업자의 관계로만 남게 된다. 정책 구조가 가진 문제점 때문에 거버넌스의 다양한 실험이 이뤄져 왔는데 그마저도 작동하지 않아 문제라면 그건 거버넌스에 대한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거버넌스 방법론을 재고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현행 보조 사업 구조에서 좋은 보조 사업자의 존재가 좋은 거버넌스의 조건이나 전제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좋은 소비자가 좋은 상품의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은 소비자에게 완전 경쟁에 가까운 시장이 만들어졌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사실상 독점적인 시장 내에서 좋은 보조 사업자를 요구하는 것은 의도가 어떻든 선택적 지원 정책으로 받아들여질 개연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거버넌스는 문화예술 정책에 있어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먼저 어떤 형식의 거버넌스이건 그 과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참가자가 고려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가 정확히 확인돼야 한다. 이 역할은 오롯이 거버넌스의 대상인 정부의 몫이다. 또한 어떤 주제든 거버넌스의 결론은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즉 상황과 조건이 바뀌면 또다시 변경될 테지만 그때까지는 이와 같은 결정으로 합의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민간 참여자에게 특히 해당된다. 어떤 결정도 최종적일 수 없다. 특히 문화예술 정책처럼 기본적으로 보조 사업 구조로 직렬화된 영역에서는 기본적으로 ‘청원형 구조’로 논의가 진행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지나치게 개별적인 사례가 일반적인 기준으로 등장하는 경우, 오랜 시간 동안 논의해왔던 거버넌스의 결론은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끝나게 된다. 개별 사례를 해결하는 것은 해당 사업 구조 내에서 집행 과정의 융통성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 일반적인 거버넌스 구조에서 다룰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법률가나 교수 등의 특정한 직종으로 과반수를 구성하면 해당 거버넌스는 실제 문제 해결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상의 답안지만 내놓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거버넌스 계층에 대한 고민이다. 하나의 이슈에 하나의 거버넌스라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이슈와 상호 교차하는 복수의 거버넌스를 고민해볼 수 있다. 특히 문화예술 영역에는 이와 같은 새로운 거버넌스의 실험이 필요하다.
공통 경험을 만드는 거버넌스
정부의 유능함과 정부의 효용감이라는 측면에서 실질적인 거버넌스의 과제를 짚어봤다. 2023년 실질적인 정부의 유능함은 표현의 자유와 예술인의 권리 보장에 놓여 있다. 그리고 정부의 효용감은 직업으로서 예술인에 대한 인정과 보장에 있다. 예술 정책의 변화와 발전이 정부의 변화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현장과 공유하는 공통 경험의 확대로 이어지려면 거버넌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선행해야 한다. 거버넌스의 숨겨진, 동시에 가장 중요한 원리는 민주주의다. 원리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실질적인 민주주의, 즉 현대 국가의 자원은 모두 시민들의 기여를 통해서 마련되고 정부의 기능은 그 자원을 효과적으로 재배치하고 분배하는 것이라는 구체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거버넌스는 정부가 인식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참고자료
1) 해당 조사는 『예술지원정책에 대한 인식과 미래수요 조사 연구』(2021)를 위해 온라인 웹페이지를 통해 2021년 8월 2일부터 20일간 진행됐으며, 총 5,596건의 유효 응답을 바탕으로 분석했다.
좋아요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