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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대상(object)이 아닌
질문(problem)으로서의 K-Arts

이른바 ‘K-Arts’라는 신드롬이 현상을 넘어
정책 대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기초예술과
‘K’라는 국가 브랜드의 관계는 여전히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것이 과연 가능한 조합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단순한 문화산업의
활성화가 아닌 우리 기초예술이 내재한 사유와 고민이
세계인에게도 받아들여지려면, 우리가 지향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목적을 고민해야 합니다.
글_김대현(A SQUARE 편집위원장)
‘K-콘텐츠’의 후광이 아닌
기초예술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문화예술은 한 국가의 역량을 총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비가시적 영역의 집합입니다. 석유, 가스 같은 자원보유량이나 국내 총생산량(GDP) 같은 경제적∙정량적 수치를 넘어 국가 공동체 구성원들이 창작하고 향유하는 문화예술의 수준이 해당 국가의 격을 대변해주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또한 기초예술은 그 명칭이 지시하는 바와 같이 오랜 시간에 걸쳐 각 예술 현장의 기저에서 근본적인 토대를 이루는 영역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이른바 ‘K-콘텐츠’의 부상도 많은 문화예술인의 노력으로 다져온 우리 기초예술의 자장에서 성장했음은 분명합니다. 예술 작품의 성취와 온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빈번히 들려오는 해외의 예술상 수상 소식이나 국제 비엔날레 등에서 한국의 작품과 전통예술이 전방위적으로 주목 받는 이유도 이 지점에 있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정부를 비롯해 각계에서 기초예술의 세계화, 소위 ‘K-Arts’를 위한 지원 정책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직 기초예술과 ‘K’라는 국가 브랜드의 관계에 관해 명료하게 정립된 의견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나아가 이것이 과연 가능한 조합인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이견이 있는 상황입니다. 단지 한국을 기반으로 창작되고 향유되는 기초예술이라는 미약한 합의만이 시도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국가들의 기초예술과 구분되는 지칭으로서 K-Arts의 세계화를 묻기 위해서는 그 응답이 단순한 문화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요구의 수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기초예술에 내재된 사유와 정동을 통해 세계인에게 소구되는 내용과 형식, 나아가 예술 한류를 통해 우리의 기초예술이 지향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치열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만일 이에 대한 논의가 부재한 채 기존 K-콘텐츠의 성공 도식을 별다른 고민 없이 그대로 답습한다면 기초예술의 세계화는 K-콘텐츠의 후광에 따른 한시적 유행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A SQUARE 제5호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재 기초예술의 각 분야에서 호명되고 있는 이른바 K-Arts 또는 예술 한류의 현황을 살피고 그 실체가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합니다. 나아가 예술 한류에 대한 예술인들의 시각,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예술감독의 의견을 청취해 이와 같은 흐름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 지속 가능한 흐름으로 이어질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예술 한류
미래를 위한 예술 한류
SQUARE에서는 ‘K-Arts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여섯 편의 글을 담았습니다. 이동연의 ‘예술 한류란 무엇인가 : K-Arts의 실체와 경쟁력’은 현재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예술 한류의 동력을 체계적인 예술 교육 시스템과 정부의 지원정책, 한국의 위상 강화에서 찾고 있습니다. 또한 예술 한류 논의의 지형을 ‘현상으로서의 예술 한류’, ‘담론으로서의 예술 한류’, ‘정책으로서의 예술 한류’로 분류하고 예술 한류의 지속을 위해서는 가시적 성과라는 현상을 넘어 현상의 담론화를 통해 고유한 흐름으로 자리매김하고 정책적으로 이를 지지할 수 있는 지원 체계와 계획이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최석규의 ‘K-Arts의 성장을 이끌 21세기 공연예술의 동시대성’은 본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범주에도 공통으로 자리하는 접두어 ‘K’에 내포된 의미를 바탕으로 그간 이에 기반한 한국 공연예술의 국제 교류의 역사를 짚어 봅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공연예술 양식의 변화 및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하는 한편 다양성을 바탕으로 개별 서사의 고유성에 기대는 동시대 공연예술을 ‘K'라는 국가 브랜드로 획일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집니다. 오히려 국적과 시장을 넘어 연대의 시점에서 동시대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때 한국 공연예술이 세계 속에 공존할 수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주연화의 ‘질적 가치를 발산하는 K-미술의 백년대계를 꿈꾸며’는 세계 문화 시장을 주도하는 K-콘텐츠의 위상이 곧바로 K-Arts의 세계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소박한 낙관을 경계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치밀하고 단계적인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언급합니다. 나아가 변화된 미술 생태계에 맞춘 유통 시스템의 마련과 기초예술을 수익화 모델로만 접근하는 근시안적인 정책에서 벗어나 교육 체계의 혁신을 통해 한국 미술의 질적 도약을 모색하고 국제적 미술의 흐름 속에서 한국 미술의 고유성이 새겨질 수 있도록 근본적 토양을 조성해야 한다고 진단합니다.
장은수의 ‘130년 후 불어온 새로운 바람, 한국 문학의 세계화’는 주요한 해외 문학상 수상을 비롯해 다양한 언어로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는 문학 한류의 현황을 기술하며 이를 추동한 주요 동력을 한국 문학의 작품성과 함께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을 돕는 공∙사적 지원 체계의 구축으로 판단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문학 한류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국내외 문인들이 활발히 교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외국인 전문 번역자의 양성, 트랜스 미디어 현상을 견인하는 장르 문학의 해외 진출 활성화 정책 등을 주문합니다.
원일의 ‘전통과 닿은 역동적 DNA, K-Arts의 다음을 꿈꾸다’는 예술 한류를 주도하는 한국의 문화적 DNA의 핵심 요소를 구술 문화적 습성이라 진단하고 이를 정악, 산조, 시나위, 판소리, 장단 등 전통음악의 다양한 형식들과 접목해 검토합니다. 전통음악의 범주 내에서 서로의 형식을 보충하고 때로는 배반하는 자유분방한 역동성이 예술 한류의 원동력이라는 의견과 함께 전통음악이 K-Arts로 발전하기 위한 정책으로 기초예술의 필요성과 목적에 대한 환기, 전통음악을 요소로 하는 창의적 교육 과정의 도입, 전문 인력 양성 및 기반 시설 조성 등을 제시합니다.
정종은의 ‘한류의 넥스트 패러다임을 위한 문화예술 정책의 과제’는 대중문화 한류의 성공 요인을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정책 개발과 한국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도출된 문화적 역량, 디지털 인프라에 기반한 산업 모델의 조화에서 찾고 있습니다. 예술 한류가 이를 따르기 위해서는 대중문화 콘텐츠와 기초예술의 상보적인 상호작용을 추구하는 한편, 한국인을 시작으로 세계인들이 K-Arts를 지지할 수 있는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오프라인을 넘어 디지털 예술 세계로의 진출을 요청합니다.
PRISM에서는 예술 한류의 직접 당사자인 현장 예술인들의 인식을 통계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권용민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국제교류사업에 참여한 예술인을 대상으로 ‘예술 한류에 대한 예술인 인식 분석’을 조사했습니다. 사업 참여 경험, 예술 한류 정책 및 해외 수용에 대한 인식, 예술 한류의 미래 전망 및 활성화에 관한 예술인의 의견을 청취하고 이를 분석합니다. 예술 한류의 최전선에서 느낀 예술인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향후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SCENE은 ‘미래의 실험실’을 주제로 개최된 2023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의 전시를 총괄한 박경, 정소익 공동 예술감독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2086: 우리는 어떻게?’를 표제로 삼은 한국관은 도시화에 따른 지역의 식민화, 자본 축적의 불균형과 노동 이주, 지역 커뮤니티의 생활 조건 등을 다룬 네 개의 ‘미래 공동체 프로젝트’와 이와 연동해 한국을 넘어 인류 공통의 문제에 관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투게더 하우’ 게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갈 내일을 위한 질문에 관한 응답의 실마리를 두 예술감독으로부터 들어봤습니다.
FLOW는 최근 예술 시장에서 확산 중인 장르 간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 페어링을 주제로 세 가지 시선을 준비했습니다. 강유정은 문학과 다른 예술적 감각의 페어링이 향유자들에게 더 많은 충족감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여전히 그 중심은 서사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지현은 미술가와 재단의 협업을 통해 기존의 작품이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가지는 과정을 소개하고 이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예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인선은 전통예술과 해외 명품 브랜드의 협업이 보편과 특수라는 각자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성공 사례로 제시합니다. 현재 예술장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들이니 일독하시길 바랍니다.
문학평론가 프랑코 모레티(Franco Moretti)는 “세계 문학은 대상(object)이 아닌 질문(problem)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는 이른바 K-Arts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명제라 생각합니다. K-Arts는 단순히 한국에서 산출된 모든 기초예술의 총합이 아니며, 어느 하나의 지점에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시대가 내포한 근본적인 모순을 부여잡고 부재한 답을 찾아 끊임없이 유동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주제 중 하나가 ‘투게더 하우’인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예술 한류의 가능성도 어쩌면 이 지점에 있을지 모릅니다. 한국의 기초예술이 자본과 산업의 논리를 넘어 인류 공통의 문제를 함께 응시할 수 있을 때 세계인의 존중과 경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김대현
김대현(A SQUARE 편집위원장)

2011년 ‘플랫폼’ 문화비평상, 2012 ‘실천문학’ 문학평론 신인상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플랫폼’, ‘내일을 여는 작가’의 편집위원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당신의 징표-이름의 존재론과 성의 정치학』, 『불온한 제국』, 『이소선의 기억과 기록(편저)』, 『전태일의 친구들(편저)』, 『법정에서 만난 역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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