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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ts를 위한
21세기 공연예술의 동시대성

문화 다양성, 기술 발전, 코로나19는 공연예술에
새로운 과제를 던졌고 예술 환경은 급변하고 있지만,
관객과 현재를 잇고 나아가 작품과 세계를 연결하는
‘예술의 동시대성’이라는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초국가적인 주제와 예술가의 사회적 연대 의식이
작품 속에 담겨야 하는 이유이다.
글_최석규(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
접두어 ‘K’의 고찰
‘국내 공연의 해외 진출 현황과 앞으로의 과제를 다뤄 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고 몇 주를 머뭇거렸다. 그 이유는 ‘기초예술 중 공연예술의 세계화가 21세기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의문과 한류를 의미하는 접두어 ‘케이(K)’에 대한 껄끄러움 때문이다. 개별성과 고유성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의 기본 특성을 우리는 과연 ‘K-Arts’라는 국가 정책적 단어로 브랜딩할 수 있을까? 본문에 앞서 접두어 ‘케이(K)’의 의미를 짚어보자. 이에 대한 담론은 이미 빈번하게 이뤄졌기에 다시 언급하는 것이 반복적일 수 있지만, 대중문화와 다른 기초예술인 공연예술의 세계화, 즉 국제교류, 시장 진출, 국제 이동성1 확장을 논의하기 위해 접두어 K를 다시 한번 고찰해본다. 박소정2은 K-담론을 다섯 가지 층위로 나눠 살펴보고 있다. 대중문화와 문화산업의 관점과 다른 공연예술의 시각으로 볼 때, 세 가지 담론은 주요한 유효지점이 있다. 첫째, K는 해외의 인정과 국가의 자긍심이 담긴 기호이다. 둘째, K는 시장과 정책을 국가적 의지 하에 묶어내는 기능을 해온 가운데, K-담론은 문화적 효과보다 시장 성과의 측면이 강조된다. 셋째, K는 ‘한국적인 무언가’를 강조하며 국제무대 속 한국성을 확인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이 K-담론의 세 가지 층위를 그간 공연예술의 분야의 국제 교류에 적용한다면, 한국성 혹은 전통성을 토대로 하는 예술 교류, 공연예술의 시장 진출과 개발, 그리고 예술과 문화의 외교적 교류에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예술 교류라고 해서 문화예술 외교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층위가 다양하게 중첩돼 나타난다. 그러므로 K-Arts의 세계화 혹은 국제적 경쟁력은 어떻게 정의 할 수 있고, 그것의 목적은 무엇인가는 첫 번째 논의돼야 할 질문이다.

2022 서울아트마켓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 공연예술의
국제 교류 양상의 변화
한국의 국제 교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면, 1960~1970년대 전통문화의 계승이나 한국의 정체성 홍보에 초점을 두고, 국가기관과 국립 단체 중심으로 예술 교류가 이뤄졌다.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해외여행 자유화, 동유럽 국가의 개방, 민주화 바람, 인터넷의 발달로 공연예술의 국제 교류 양상을 변화하기 시작한다. 1990년 이후, 세계화와 지방자치제도로 민간, 지역 차원의 국제 교류가 활발해졌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 국제 교류의 관심은 시장 진출과 확대에 집중됐다. 연극, 무용 단체들의 해외 투어가 활성화하면서 국내에 ‘서울아트마켓(PAMS, Performing Arts Market in Seoul)’3 이 만들어졌고 이를 중심으로 한 시장 진출과 국제 교류 네트워크가 확산했다. 2010년 이후 아시아의 경제적 안정을 기반으로 아시아 동시대 예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서구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예술 교류가 아시아로 확대했다.

브러쉬씨어터 필라델피아 투어 현장 ⒸBRUSH Theatre

2005년 이후 서울아트마켓을 통한 한국 공연예술의 국제 교류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여전히 무용 장르가 가장 많은 해외 투어를 진행하고 있으며,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한 창작 음악 공연, 연극, 다원예술 순으로 나타난다. 예술 교류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 진출이라는 국제 유통의 목적이 강조되면서 다양한 형식의 국제 교류가 일어난 것이다. 이 경우 대부분 예술가와 예술 단체가 창작, 제작을 담당하고 극장과 축제 등에서 1~2회 단기 투어를 하는 형식이다. 반면 안은미컴퍼니, 브러쉬씨어터 등 해외 인지도를 지닌 중견 예술 단체는 연 2~3회 시즌 투어, 레퍼토리 공연을 중·장기간 동안 해외에서 지속한다.4 또한 유럽을 기반으로 두고 활동하는 안무가 허성임, 연극∙다원예술가 구자하 등 독일 베를린과 벨기에 브뤼셀, 네덜란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증가했다. 2015년부터 해외 공연예술 시장은 세계 각국의 유통 작품이 증가하면서 경쟁이 가속화된다. 작품 유통의 형식 또한 단순한 투어 방식이 아닌 제작에 직접 참여하거나 지역화가 이뤄지는 등 다각화하며 문화 다양성과 예술의 가치, 가능성에 주목하고 과정 중심의 교류 확대로 레지던스 프로그램, 리서치 등 국제 이동성이 확대된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유통 매개 형식의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공연예술의 던진 질문들
2020년, 전 세계가 함께 맞이한 코로나19 팬데믹은 현장성이 중요한 공연예술의 국제 교류, 시장 진출 그리고 국제 이동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기존의 공연예술 형식과 관객 만나기에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 첫째, 전통적인 공연 형식, 극장 공간, 관객 개발에 전면적인 새로운 접근과 방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해외 투어 시 작품의 물리적 이동만 이뤄지던 기존과 달리 작품의 콘셉트와 컨텍스트, 안무 스코어5를 현지 예술가, 커뮤니티와 함께 만드는 컨셉 투어이링 방식의 제작이 활발해졌다. 둘째, 공연예술의 디지털화(Digitalization)와 디지털 이동성(Digital Mobility)에 대한 과제가 주어졌다. 온라인 스트리밍과 디지털 온라인 플랫폼의 가능성, 디지털-피지컬 통합 제작 방식 등 새로운 모습의 국제 협업과 창작 방법론이 대두됐다.
셋째, 이동의 제한으로 이웃과 지역을 향한 관심을 높아짐에 따라 예술의 지역화와 탈중앙화를 가속했다. 넷째, 기후 위기에 따른 예술과 환경의 관계성 재인식에 질문을 던지며 예술계 내에 그린 모빌리티(Green Mobility)6와 딥 모빌리티(Deep Mobility)를 논의하게 됐다. 예술을 만들고 누리기 위해서는 어딘가로 이동해야 하며, 국제 교류에서 타국 간의 이동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두 개념은 이 과정에서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방법, 환경을 고려한 창 ·제작 방법을 고민하며 환경 문제를 개선할 새로운 실천 방법을 이야기한다. 다섯째, 코로나19 팬데믹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국제성, 세계성에 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국제 교류에서 중요한 것은 이동 방식이 아니라 무엇이 이동돼야 하는가, 즉 예술의 어떤 가치를 전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했다. 이에 따라 초국가적인 주제가 예술가와 작품의 확산에 주요한 화두가 되고, 예술가의 사회적, 국제적 연대 의식이 강화하며 작품과 세계를 연결하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므로 팬데믹 이후의 급변하고 있는 국제 교류와 시장의 변화, 공연예술의 가치와 예술 형식의 변화에 따른 K-Arts의 세계화 혹은 국제적 경쟁력에 대한 새로운 전략이 논의돼야 한다.
세계와 함께하기 위한
한국 공연예술의 과제
공연예술 분야에서 K-Arts는 여전히 그 담론적 정의와 국제적 경쟁력을 답하기 어렵다. 대중문화 속 한류처럼 하나의 문화적 신드롬과 시장 경쟁력으로 이야기하기에는 공연예술만의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무대에서 이뤄지는 현장성, 대중문화의 향유자와 달리 세밀하게 나뉘는 관객의 기호와 취향, 국제적 이동 방식의 차이는 두 분야를 같은 구조하에서 논의하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세계 속에 함께 공존하고 한국 공연예술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다음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개별성, 동시대성, 다양성 그리고 다층적 접근 방식과 목표 설정이다. 아시아 문화 정체성과 무용의 시각적 장치와 서사라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안은미, 비디오와 음악, 멀티미디어를 결합한 동시대 공연예술가 구자하, 어어부 프로젝트부터 이날치로 이어지는 전방위 음악가 장영규의 예술성을 우리는 K-Arts로 한데 묶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은 각 예술가의 개별성, 독창성, 고유성에 대한 개별 서사이다. 또한 한국적 전통성, 특수성에 기반한 K-Arts가 아닌 초국가성, 동시대성, 다양성에 기반해 현재를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안은미컴퍼니 <나는 스무살입니다> ⒸAhneunme 안은미

해외에서 예술적 인지도가 높은 예술가와 단체는 레퍼토리 형식의 시즌 투어, 축제 및 극장 네트워크를 통한 공동 제작의 기회를 전략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반면 중견 예술가와 단체는 단기 투어와 해외 유통 전문 기획사 등 네트워크를 개발하고 확장해야 한다. 국제 교류의 초기 단계에 놓인 예술가와 단체들은 리서치 연구, 레지던스 프로그램 등 교류 기회를 높일 수 있는 다층적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 아웃바운드와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교류를 지양해야 한다. K-Arts를 위한 한국의 국제 교류 대부분은 해외에서의 교류와 시장 진출에 집중돼 있다. 국제 교류의 주요 목적이 해외에서의 인정과 경제적 이윤 창출이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대중문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온 외국인들과 외국인 거주자, 학생, 노동인구가 공존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세계화를 위한 생각의 전환이 절실하다. 차이와 다름의 극복을 K-Arts가 아닌 인바운드로, 즉 새로운 예술 교류 전개 방식을 통해 타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유럽과 북미 중심의 예술에 치우치는 경향에서 벗어나 아시아, 아랍, 남미 등 다양한 국가와의 예술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
셋째, 예술 작품과 더불어 예술가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국제 교류와 시장 진출 과정에서 먼저 소개되는 것은 예술가가 아닌 예술 작품이다. 지속 가능한 교류,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예술 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예술가를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예술가의 방향성, 비평 및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소개를 보여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한데 연극의 경우 영문 대본, 작품과 연동할 수 있는 워크숍과 마스터 클래스 프로그램, 예술가의 향후 계획 등이 구체적으로 소개돼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의 활용으로 예술가의 전략적 소개는 다양한 형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공공과 민간의 거버넌스 개선과 관계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필자는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 영국 측 예술감독을 맡아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한영 간 예술 및 창의 부문의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열린 이 행사에는 800명 넘는 예술가와 전문가들 참여해 작품을 통해 창의적이고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했다. 당시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한국의 프로젝트 기획과 설계 과정 사이에 벌어지는 차이, 즉 중장기 계획 없이 이뤄지는 단년도 계획과 지원 방식이었다.
또한 행사의 주최를 늘 정부 주도 공공기관이 담당하는데 인력이 자주 교체되고, 민간기관과의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지속성을 갖고 장기적인 관계를 만들기가 무척 어려웠다. 정부 정책을 실행하고 공공기관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민간과의 협력적 거버넌스는 필수적이지만, 한국에서 이는 매우 요원해 보인다. 잉글랜드 예술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지원하는 민간 예술 단체 NPO(National Portfolio Organization)는 3~5년 중·장기 인력 지원을 기본으로 한다. 이와 달리 한국은 단기성 프로젝트 지원으로 중장기 운영이 불가능하고 사람이 아닌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구조로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단기적인 시장 개발 중심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만들기, 네트워크 확대가 이뤄지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알랭 플라텔 <Coup Fatal> ⒸSadler's Wells

1990년 유럽의 공연예술계에 벨기에 웨이브(Belgium Wave)가 일었다. 정확히는 ‘플레미쉬 웨이브(The Flemish Wave)’로 얀 파브르(Jan Fabre), 알랭 플라텔 (Alain Platel), 니드 컴퍼니(Need Company) 등이 그 핵심에 있는 예술가들이다. 사회적 문제의식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다양한 문화 수용이라는 동시대성, 기존 전통 현대무용의 문법을 파괴한 강력한 비주얼 캐릭터와 파격적 몸짓, 건축과 영상, 오페라 등 타 장르와 융합한 크로스오버 등 새로운 예술적 특성으로 포스트 모던 댄스와는 또 다른 무용계의 흐름, ‘누벨 당스(Nouvell Danse)’를 만들었다. 물론 개별 예술가들의 작업을 플레미쉬 웨이브로 총칭하는 것에 많은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유럽과 세계 무용계에 분명한 새로운 조류 현상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흐름이 정책적 주도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술가의 개별성과 고유성, 비평과 기획 등이 함께 어우러진 유기적 관계 속에 만들어졌고, 플레미쉬(Flemish) 지방정부가 그 현상을 정책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K-Arts는 지금의 예술의 동시대성에서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 그리고 누가 만들 수 있는가?
  1. 공연예술 분야에서 말하는 국제 이동성이란 작품의 유통이라는 단편적인 이동 개념을 뛰어넘은, 예술의 지속 가능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화와 예술의 다양성에 주목함에 따라 과정 중심의 레지던스, 리서치, 랩 형식의 교류와 이동성이 강화되고 있다. 즉 작품 자체의 이동보다는 작품을 둘러싼 사람, 예술가의 이동성이 핵심이 된다.
  2. 박소정, ‘K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 Hallyu Now volume 51,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2
  3. 다양하고 활발한 창작과 제작을 바탕으로 한 한국공연예술 작품들의 합리적인 유통과 해외 진출 활성화를 위한 국제 공연예술 플랫폼으로 2005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창설된 이래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을 받아 매년 10월에 개최하고 있다.
  4. 안은미컴퍼니는 2018년 여름, 루마니아 시비우 국제 연극제(Sibiu International Theatre Festival), 체코 타넥 프라하(TANEC Praha), 스페인 바르셀로나 그렉 페스티벌(Barcelona Grec Festival)에서 공연을 선보였으며, 브러쉬씨어터 역시 2019년 미국 필라델피아, 터키 이즈미르, 덴마크 예링, 캐나다 토론토 등 다양한 국가에서 투어를 가졌다.
  5. 안무에서 이뤄지는 움직임의 자취 또는 궤적
  6. 공연예술에서 그린 모빌리티, 딥 모빌리티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예술 행동으로 국제 이동성에 있어 탄소 배출(Carbon Footprint)을 줄이고, 친환경으로 제작함을 말한다.
최석규
최석규(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

동시대 중요한 화두 중 예술과 도시, 예술의 다양성과 포용성, 예술과 테크놀로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리서치, 워크숍 등을 열고 있다. ‘춘천마임축제’, ‘안산국제거리극축제’,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 등 공연예술 축제에서 축제감독과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2005년 창립한 아시아나우(AsiaNow)를 통해, 지난 10년간 한국 연극의 국제 교류, 국제 공동 창작, 국제 레지던스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2014년부터 시작한 아시아 프로듀서들의 다양한 프로젝트 개발을 위한 협력 네트워크인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sian Producer’s Platform)’과 ‘에이피피 캠프(APP Camp)’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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