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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가 주목한, 그리고
앞으로도 주목할 담론들

문화예술은 현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시대가 요청하는 가장 첨예한 주제를 실천적으로
이야기한다. 코로나19 비상사태의 종료,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 다중위기로 인한
분열 속에서 한 해를 마무리한 가운데 지난해
문화예술계에서는 어떤 담론이 오갔을까?
2023년 문화예술 현장에서 주목한 담론과
올해도 이어질 문제를 살펴본다.
글_이광석(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전공 교수)
생명 절멸의 위기 속
인류세, 기후 위기, 생태 담론의 확산
이 글은 2023년 있었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문화예술계 주요 담론을 되짚어보고, 이에 기반해 2024년 향후 주목할만한 주요 담론의 지형을 거칠게나마 예측하는데 목표를 둔다. 2023년을 되돌아보면 가장 눈에 띄게는 코로나19 비상사태의 공식 종료,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 열풍, 다중(복합)위기 시대의 분열하는 세계 선언이란 동시대 의제가 중심에 놓여 있다. 문화예술계 담론 지형도 이에 크게 반응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구체적으로 생태주의 담론의 확산, 생성형 AI와 창·제작의 위기 논쟁, 장르·사조·영역 등 경계를 횡단하는 융합과 혼종에 기댄 문화예술 형식 실험이 크게 두드러졌다. 이들 각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2023년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 공중보건 위기 상황을 공식적으로 해제했던 해였다. 거의 3년 4개월 남짓 코로나19 재난으로 인한 생명 고통과 비상 상황의 유지가 가까스로 종료됐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와 유사한 인수공통 감염병의 위협이 상존할 것이라는 근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지구 온난화가 악화하면서 기후 재난의 징후가 한층 더 두드러졌다. 국내만 보더라도 가뭄, 폭염, 홍수, 산불 등 기후 재난과 인재까지 겹치면서 많은 생명 약자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세계 끝의 버섯 Ⓒ현실문화도서출판

그래서일까? 2023년은 더욱 ‘인류세(Anthropocene)’ 국면 기후 위기 현실을 다루는 크고 작은 환경 관련 전시, 세미나, 강연, 생태 이론 번역서 출판 등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가령 뒤늦게 번역된 문화인류학자 애나 칭(Anna Tsing)의 『세계 끝의 버섯』에 대한 과열된 예술계 내부 독서 열풍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생태 담론의 과잉 상황을 쉽게 목도할 수 있었다. 주제 범위로 보자면 생태 이론, 생태 비평, 생명 사상, 동·식물권, 탈성장, 탈식민주의, 신유물(물질)론적 페미니즘, 생태 인류학, 재야생화(rewilding), 기후 정의 등 한 번에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팎에서 생태 담론이 넘쳐났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공립 미술관, 박물관 등을 중심으로 기후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하고 탈탄소 전환에 부응하기 위해 환경주의적인 방식으로 전시 과정을 재점검하는 시도도 이뤄졌다. 그 외에도 인류세 미술, 생태 미술, 여성미술, 토속미술, 친환경 공예와 디자인·건축 등에서 예술의 생태주의적 상상력을 찾기도 했다.
2023년 문화예술계에서 생태 담론이 봇물 터지듯 샘솟는 현상은 꽤 양가적으로 읽힌다. 긍정적 신호는 문화예술계 스스로 기후 재난과 생명 절멸의 위기 상황을 창작의 서사로 삼아 관객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한 데 있다. 그러나 생태주의적 실천과 개입의 토양이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생태 담론만의 급격한 팽창은 창작자의 미학적 표현과 결과에서 비판적 성찰보다는 환경 계몽주의적 조급증이 주로 발견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서구 생태이론을 성급히 받아들이고, 설익은 상태로 이를 쉽게 창·제작 작업으로 외부화하는 기획 사례들이 흔했다.
문화예술계에 위기감을 던진
생성형 인공지능 신드롬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크게 달라진 대중 정서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리적(사회적) 거리두기’가 쌓아 올린 오랜 비대면 문화 속에서 우리 사회는 디지털 기술에 크게 민감해지고 일종의 ‘기술 감각’에 예민해졌다. 사회적으로 신기술 밀도가 높아지면서 메타버스 광풍에 이어 생성형 AI 열풍으로 이어졌다. 특히 AI 기술이 우리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인식되면서 문화예술계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서 우리 사회 일반의 논쟁적 화두가 됐다. 그로 인해 AI 가 전통의 창·제작 활동에 미칠 파급력과 영향에 대한 각종 문예지와 미술 잡지의 기획 특집, 생성형 AI와 예술 창작, 그리고 노동의 미래에 관한 세미나와 토론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트앤테크놀로지 지원사업 등을 매개로 한 지능형 AI 알고리즘 전시와 프로젝트 기획 등이 크게 쟁점화했다.

2023년 기술융합 예술 지원사업 통합 성과공유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년 기술융합 예술 지원사업 통합 성과공유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년 기술융합 예술 지원사업 통합 성과공유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년 기술융합 예술 지원사업 통합 성과공유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I 담론 가운데서도 단연 화두는 ‘생성형 AI 범용화’에 쏠렸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유일한 능력으로 믿었던 창·제작 능력이 아주 빠르게 이 지능형 기술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문화예술계의 위기감이 크게 일었다. 올해 국내 담론은 기술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서 이른바 ‘AI 실용주의’가 주목받았다. AI 실용주의란 AI를 성장과 혁신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낙관론이나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해 노동 소멸과 위기를 불러온다고 보는 비관론 두 양단의 문제 지점을 경계하면서도 인간의 창·제작에 이로운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목표를 둔다. 문제는 AI를 활용하는 평범한 개별 주체가 사유화된 기업 기술의 상품 미학적 설계와 비즈니스 논리 자체에 관여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AI 실용주의 노선 또한 향후 생성형 AI의 미래와 관련해 지속적인 담론 논쟁이 이어질 듯하다.
다중위기 시대 속
융합과 혼종의 예술 문화 형식 실험
2023년 1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서는 전 세계가 마주한 위기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며 ‘다중위기(policrisis)’가 키워드로 떠올랐다. 그만큼 오늘날 기후 위기, 인간을 위협하는 지능형 기술의 도래,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국지전과 대규모 인종 학살로 인한 현대인의 정서적 불안과 구조적인 위태로움이 점차 증대하고 있다. 분열된 세계 속에서 특정의 확고한 이념이나 담론이 지배적 지위에 도달하지 못할 때, 이를 벗어나기 위한 유효한 생존 방법 중 하나는 서로 다른 문화, 장르, 사조, 영역 등이 상호 재매개되거나 경계를 넘어 융합하고 접 붙는 교차 흐름과 실험일 것이다.
예술계 ‘메타모더니즘(Meta-Modernism)’의 유행도 그 일환이라 볼 수 있겠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횡단해 그사이 어딘가에서 진자(振子)하는 사조의 발흥은 극단을 지양하고 일종의 잡종적이고 혼종적인 예술 사조를 통해 오늘날 불안정한 현실을 재해석하고 이를 새로운 예술 미학적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동기가 내포돼 있다. 그 외에도 융합이 빈번한 아트-테크놀로지(Art-Technology), 문화-테크놀로지(Culture-Technology) 영역은 물론 새롭게 영화-미술-패션하우스 브랜드, 미술관-게임 등 창·제작 경계를 넘나드는 장르나 부문 융합과 횡단 패턴이 흔하게 발견된다. 이들 중 일부는 K-컬처나 신성장 산업 논리에 영향을 받은 융합 현상이기도 하다. 즉 부분적으로는 문화예술계 새로운 틈새시장을 노린 장르나 부문 간의 합종연횡 시도로 파악해 볼 수 있다.
직접적으로 포스트휴머니즘이나 젠더 정체성의 정치 등 담론 사이의 융합과 횡단도 두드러졌다. 특히 여성주의와 기술 담론, 여성주의와 생태 담론에서 경계 확장적인 논의 흐름이 크게 눈에 띈다. 먼저 여성주의와 기술 논의에서는 이른바 테크노 페미니즘, 제노 페미니즘, 글리치 페미니즘 등 여성주의의 상호 교차적·확장적 담론을 들 수 있다. 이들 서구 개념에 영향받은 국내 담론 지형은 좀 더 남성 중심의 기술 서사를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미학적으로 재배치하는 기술 정치적 효과를 지녔다. 동시에 여성주의와 생태 담론에서는 ‘신유물론’의 영향을 받고 인간과 인간이 아닌 주체들 사이의 생태주의적 얽힘을 논의하는 생태 페미니즘, 신유물론적 페미니즘, 여성주의적 환경 인문학 등 혼종적 정체성 이론과 신유물론과의 횡단 흐름이 주목할 만하다.
이제는 공생적 협력을 도모할 때
2024 문화예술계 담론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기후 위기, 전쟁, 불평등, 탈진실 등 다중위기의 지표가 더 깊어질 것으로 본다. 그 가운데 우리 일상에서 긴급하게 요청되는 기후 위기 실천 의제, 그리고, 인간의 일과 삶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지능형 기술의 범용화 문제가 지속해 우리 사회의 주된 관심사로 남을 것이다. 문화예술계에서도 향후 관련 논의 지형이 더 심화할 것이다. 첫째, 문화예술계의 생태 담론은 2024년 새해에도 지속되겠지만, 그 논의가 질적으로 심화하면서 다소 담론의 과잉이나 거품이 수그러들 확률이 높다. 생태 담론 과잉의 거품이 일부 걷히면 좀 더 기후 현실 개입의 상상력을 키우는 창작 작업이 여럿 등장할 것이다. 숙고의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우리 현실에 적합한 생태주의적 철학과 이론, 분석, 비평, 실험, 개입의 토착화도 빠르게 이어질 것이다. 그와 함께 생태주의 논의 지형도 다변화하리라 본다. 가령 ‘땅(흙/대지)’의 문제를 다루는 녹색(그린) 인문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바다와 물의 생태에 관한 블루 인문학 영역에 관한 관심과 탐구가 서서히 주목받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들 모두 여러 생명의 얽힘에 대한 생태 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넓히는 데 일조하리라 본다.
둘째, 생성형 AI 등 AI의 문화예술계 논의 구도에 좀 더 날이 서고 구체적 논쟁이 오갈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AI의 사회적 범용화에 따라 인간 창·제작에 미치는 영향과 효과에 대한 논쟁이 좀 더 확대될 것으로 본다. 논의가 2023년에 이미 시작됐지만 아직은 문화예술계 안에서 충분히 숙의되지 않았다. 이를테면 인류의 창·제작 데이터를 무작위로 허락 없이 대거 수취하는 방식이나 거대 텍스트와 이미지 데이터 무단 수집과 생성형 AI에 의한 사전학습 등 저작권 논쟁에 대해 관련 AI 기업들이 창·제작자 권리와 집단 보상권을 과연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제시할 것인지가 주요 화두로 부상할 것으로 본다. 근본적으로는 AI의 범용화가 인간 삶에 미치는 다층적인 영향과 효과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다. 이에 대한 문화예술계 의제도 훨씬 증가할 것이다. 즉 AI의 사회적 안착과 관련해 동시대 문제 지점이나 근미래 논쟁 의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를 것이다. 가령, 인간 아닌 지능 기계에 의한 창작물 자동 생성 문제는 물론 창의적 일자리나 문화 활동의 AI 자동화 대체 효과, 생성형 AI 시대 예술 교육의 위상, 허위 조작 데이터와 정보의 폭주 등이 문화예술계 주요 의제로 재점화할 확률이 높다.
셋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트-테크놀로지나 뉴미디어 아트 분야가 시간이 갈수록 생태주의 담론에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의 위상을 새롭게 재설정해야 하는 상황이 빠르게 오고 있다. 이제까지 생태 담론과 기술 담론은 서로 각자의 분리된 성곽을 쌓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이 둘은 가장 중요하게 동시대 담론의 물질적 조건을 규정해왔지만, 함께 공존할 방법을 찾기 위한 생산적 대화의 물꼬를 트지 않았다. 아니면 서로가 대화법을 이제까지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향후 생태 논의가 점차 중요해지면서 기술 담론을 아우르거나 그 양자가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동거할 공산이 크다. 즉 생태와 기술의 모순적 관계를 해독하려 하거나 기술로 생태 문제를 보완하려는 등 상호 합목적적으로 공존할 방법에 주목하는 ‘기술-생태’의 횡단적 논의가 부상하리라 본다. 이제까지 디지털 기술은 무해한 비물질의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디지털 기술의 에너지 소비적이고 탄소 배출에 기댄 반환경적 속성을 지적하는 인프라·플랫폼 연구, 디지털 물성 연구 등이 늘고 있다. 이 또한 ‘기술 생태주의’에 관한 담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징후로 볼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2024년에는 다중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인간 약자, 타자화된 주체, 비인간 생명 사이의 상호 협력, 돌봄과 ‘공생공락(conviviality)’의 구체적 방법에 대한 담론이 크게 부각할 공산이 크다. 일단 생태 담론을 통해 강조되는 생명주의적 얽힘(entanglement)과 공생의 화두는 지속적으로 우리 모두가 협력과 관계적 존재임을 각성하게 할 것이다. 특히 퀴어 주체, 이주민, 장애인 등을 비정상성과 결함으로 간주하는 주류 사회에 맞서 그들을 사회적 관계의 틀에서 파악하고 그들 신체의 나약함 대신 역량을 읽고 개별 고립과 무기력감에 맞서 상호 호혜와 공생을 강조하는 ‘상호부조’의 담론이 부각될 것이다. 이는 올해 유행했던 사조·장르·부문 간 경계나 형식을 파괴 경향을 넘어서는 관계적 담론의 질적 변화이다.
생명의 공존과 협력 논의는 단순히 타자화되고 소외된 인간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 도모에서뿐만 아니라, 인간 주체와 더불어 비인간 생명이나 기술 객체와의 공생과 협력을 모색하는 것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이를테면, 장애와 사이보그, 디지털 퀴어 등 생명과 기계 타자와의 생태적 얽힘과 상호의존을 다루는 돌봄의 정치 영역을 실질적으로 크게 확장하리라 본다. 분열하는 세계 속 다중위기로 인한 생명의 고립과 불안, 무력감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생명과의 상호 호혜적 돌봄의 공동체적 구상은 올 한해 필히 주목해야 할 담론이자 실천 지형일 것이다.
이광석
이광석(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전공 교수)

텍사스-오스틴 대학 Radio, Television & Film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비판적 문화이론 저널 『문화/과학』의 편집 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술 생태학, 디지털 문화이론, 미디어 예술 행동주의, 자동화 테크놀로지와 노동, 디지털 커먼즈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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