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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인구 감소 속
문학계 일기예보

지난 한 해 동안 한국 문학의 날씨는 다채로웠다.
‘K-문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문학을 향한
해외의 관심이 높아지며 맑음을 기록하는가 하면,
독자 수 감소라는 근본적인 고민은 여전히 흐림이다.
문학계의 의미 있는 성과와 시장의 특징을 돌아보며
2024년 한국 문학의 풍경과 일기를 예측해본다.
글_김슬기(매일경제신문 문화스포츠부 기자)
흐린 중 맑음
자기계발서의 질주와 구간의 역주행
올해 서점가에는 전례 없던 자기계발서의 질주가 이어졌다. 한 해를 결산한 자료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출간 후 무려 18주 동안 각 서점의 1위를 질주한 『세이노의 가르침』은 올해 종합 베스트셀러 1위 등극이 확실시된다. 코로나19 버블의 시기를 지나면서 ‘자본주의 키즈’들이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불황의 시대에는 언제나 자기계발서의 인기가 뜨거웠고, 기세에 눌린 문학의 자리는 좁아지곤 했다. 실제로 1~6월까지 교보문고의 소설 매출은 9.8%나 뒷걸음질을 쳤다. 작년에는 무려 17.8%나 뛰어오른 걸 고려하면 소설 독자가 큰 폭으로 줄어든 걸 알 수 있다.
2023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중 Ⓒ데이원・나무옆의자・은행나무

2023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중
Ⓒ데이원·나무옆의자·은행나무

소설 분야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은 신간보다 구간(舊刊)이 많았다. 상반기를 기준으로 교보문고 종합 10위에 이름을 올린 소설은 4권이었다. 4위는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 5위는 산카이 마코토의 『스즈메의 문단속』이 차지했다. 『불편한 편의점2』와 최진영의 『구의 증명』은 각각 8위와 9위를 기록했다. 영화 개봉으로 깜짝 베스트셀러가 된 『스즈메의 문단속』을 제외하면 모두 올해 이전에 출간된 구간이다. 신작을 꾸준히 발표한 문학 출판사들에는 꽤 힘든 한 해였다. 『불편한 편의점』 2부작은 각각 2021, 2022년에 출간됐다. 많은 신간 소설이 출간됐음에도 이 막강한 스테디셀러의 인기를 뚫기란 쉽지 않았다. 이 책의 영향이 얼마나 컸던지 편의점, 세탁소, 서점 등 공간에 대한 테마를 가진 소설이 눈에 띌 만큼 늘어났고, 따뜻한 공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힐링 소설이란 장르가 생겨났다. 『구의 증명』은 유튜브 음악 플레이리스트 콘텐츠 영향으로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후 꾸준히 유튜브 콘텐츠가 재생산되면서 인기 가도를 달린 매우 특별한 히트작이었다. 2015년 단돈 8,000원의 짧은 중편 소설로 출간된 이 소설은 무려 8년 만에 20만 부가 팔리며 종합 베스트셀러로 거듭났고 ‘역주행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2024년의 역주행 구간은 무엇일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화창
돌아온 문학상 특수
올해는 무엇보다 한국 문학이 해외로 활발하게 뻗어나간 한 해였다. 지난 4월에는 천명관의 『고래』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로 선정되면서 국내 독자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후보 선정 소식만으로 판매량도 뛰어올라 교보문고 종합 30위 이내로 즉시 진입했다. 재미있는 것은 문학 독자들은 40대가 가장 많은데 구매자 중 60대 이상 남성 독자도 10.8%나 차지하며 다른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와는 다른 판매 양상을 보였다. 이는 해외 문학상에 대한 공신력과 신뢰를 기반으로 고연령대 독자들의 관심이 녹아든 것으로 보인다. 특정 계절마다 잘 팔리는 책도 있다. 매년 봄 찾아오는 『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4월 출간과 함께 교보문고 종합 7위에 올랐다. 국내 문학상 중에서 좋은 단편에 상을 수여하고 꾸준히 수상작을 엮어 마니아 독자층을 형성한 책다운 호응이었다. 또한 한국 문학 새 얼굴들의 면면을 알 수 있는 가장 트렌디한 소설집인 동시에 20~30대 여성 독자층이 구매율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해 젊은 독자들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문학상 수상으로 주목받은 도서들 Ⓒ민음사・문학동네・지만지드라마

문학상 수상으로 주목받은 도서들
Ⓒ민음사·문학동네·지만지드라마

7월에는 영원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혀온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다시 눈길을 끌었다. 판매량이 상승해 교보문고 소설 분야 16위로 재진입했고 그 외에도 『무의미의 축제』, 『농담』 등 출간 도서들의 판매가 전주 대비 4.2배 상승했다. 국내에 애독자가 많았던 만큼 추모하는 마음으로 출간 도서들을 다시 찾는 독자들의 움직임이 엿보였다. 10월마다 돌아오는 노벨문학상 특수도 여전했다. 10월 첫째 주 욘 포세(Jon Fosse)의 대표작 『아침 그리고 저녁』은 예스24의 종합 11위를 기록했다. 예스24 측에 따르면 수상 이후 올해 연간 판매량의 50배를 기록했다. 교보문고 집계에서도 『아침 그리고 저녁(양장본)』이 132위에 올랐다. 지난 2019년 출간 이후 판매가 거의 없던 책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욘 포세의 다른 작품인 희곡 『가을날의 꿈 외』는 교보문고 예술·대중문화 부문 3위, 『이름/기타맨』은 11위에 각각 올랐다. 한 달 이상이 지나서도 꾸준히 잘 팔리는 책은 대표작 『아침 그리고 저녁』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반짝 눈길을 끈 것이 아닌 독자들의 입소문까지 더해져 인기가 지속됐다.
11월에는 한강의 2021년 출간된 장편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프랑스 4대 문학상 메디치상의 외국문학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은 한국 작가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출간 직후 이 책은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로 직행했다. 올해 문학상의 영향력이 남달랐던 만큼, 2024년에도 K-문학의 선전을 기대해볼 만하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받은 한강을 비롯해 천명관, 정보라, 김혜순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이 해외에서 활발하게 번역, 출판되고 있다. 이들이 해외에서의 낭보를 전해온다면, 국내 문학 시장에서는 태풍과 같은 거센 돌풍이 불어올 수도 있다.
크고 작은 바람
미디어셀러와 K-문학의 상승세
올해 극장가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 불었다. 그 영향으로 서점가도 특수를 누렸다. 4월 『스즈메의 문단속』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동명 소설은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큰 인기를 얻었고, 전작들도 함께 재조명받았다. 10월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개봉과 함께 첫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동명의 원작 소설 요시노 겐자부로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도 교보문고 청소년 분야 1위에 오르며 인기를 얻었다. 또한 10월 국내에는 2018년 출간한 데이비드 그랜(David Grann)의 『플라워 문』이 교보문고 역사문화 분야 5위로 첫 진입 하면서 역주행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대중매체의 조명을 받은 장편 소설 Ⓒ쓰다・엘릭시르・시공사

대중매체의 조명을 받은 장편 소설
Ⓒ쓰다·엘릭시르·시공사

미디어의 영향력은 전방위적이었다. 극장뿐 아니라, OTT와 유튜브의 영향력도 막강했다. 역시 10월에는 양귀자의 『모순』이 첫 출간인 1998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 소설 분야 1위 베스트셀러에 다시 올라 눈길을 끌었다. 2020년 초부터 분야 20위권 내에 진입하고 입소문이 더해지면서 점점 판매 상승세를 타오던 와중에 일어난 일이다. 특히 올해는 유튜버를 통해 인생의 책으로 알려지기도 하면서 관심을 이끌었다. 『스토너』도 역주행한 베스트셀러였다. 6월에는 방송인 홍진경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인생 책으로 소개한 직후 판매량이 전주 대비 30배 이상 급증했다. 예스24에서는 6월 2주 종합 베스트셀러 15위 및 영미 소설 분야 1위를 차지했다. 2015년 출간된 구간이 차트를 역주행한 것이다.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묵묵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 한 남자의 일생을 소박하게 그렸다. 소설 분야에서는 드라마셀러도 여럿 탄생했다. 7월에는 김진영의 미스터리 소설 『마당이 있는 집』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원작도 덩달아 관심을 얻었고, 10월에도 드라마로 방영된 『유괴의 날』 원작 소설의 판매가 늘어났다. 어설픈 유괴범과 11살 천재 소녀의 특별한 공조를 담은 블랙코미디로 스릴러 장르에서 손꼽히는 정해연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었다.
해외 소설 분야에서 한국어로 쓰인 작품만이 아니라, 재외교포 한국인 등 한국인의 뿌리를 가진 ‘디아스포라 작가’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한국의 역사나 문화를 바탕으로 외국어로 쓴 작품이 다시 한국어로 번역된 책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은 이민진의 『파친코』가 있다. 드라마화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원작 소설도 그 인기에 힘입어 2022년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올해는 ‘제2의 이민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작가들이 속속 등장했다.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이 눈길을 끌었고, 허주은의 『사라진 소녀들의 숲』도 해외소설 분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미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창래도 신작으로 돌아왔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해외에서 주목받는 이창래가 성인의 문턱에 선 청춘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소설 『타국에서의 일 년』을 펴냈는데 무려 9년 만의 신작 장편 소설이다. 한국계 미국인이나 한국적 배경을 소설의 무대로 즐겨 사용해온 작가가 미국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청춘의 모습을 그린 변신이 눈길을 끌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수가 매년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도 한국 역사와 문화를 토대로 활동하는 한국계 교포 작가들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는 것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훈훈한 공기의 유입
고령화, 그런데 SF 소설
여러 긍정적인 소식이 이어졌지만, 독자층의 축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문학 독자의 연령층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출간만 되면 베스트셀러 1위로 직행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6년 만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지난 9월 출간한 가운데 이 책을 집어 든 독자들의 나이는 40대 독자가 36.7%로 가장 높았고, 30대가 30.3%로 뒤를 이었다. 50대 독자도 16.3%에 달해 20대의 10.8%보다 월등하게 많았다. 젊은 시절부터 하루키를 읽으며 함께 나이가 든 독자들이 많아진 이유도 있겠지만, 국내 소설 독자들의 고령화는 거스를 수 없는 일이 됐다는 것을 방증한다. 2~30대가 주력 독자인 소설 베스트셀러는 찾기 어려워진 지가 오래다. 반면 한국을 대표하는 인기 작가 최은영의 신작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도 8월 출간과 함께 교보문고 종합 4위로 진입했다. 이 소설을 구매한 독자 중에는 여성의 비율이 77.3%로 높았고, 그중에서도 30대 여성이 30.9%, 20대 여성이 20.6% 비율순으로 높았다. 국내 문학 시장의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 독자들은 또래 작가의 책을 읽으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다.
문학계의 변화 흐름 중 돋보이는 것은 SF장르의 인기이다. 한국 독자들이 SF 소설을 읽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SF소설은 많이 팔려도 5천 부가 한계라는 말이 불과 몇 년 전까지도 통용됐음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SF소설의 인기는 이제 막 불을 지피기 시작한 상황인지라 2024년에도 중요한 키워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스타 작가가 대거 배출됐다.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김초엽은 이제 무서운 신인을 넘어 국내 최고의 스타 작가가 됐다. 2021년 펴낸 첫 장편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은 15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로 거듭났다. 2년만인 올해 10월 출간된 신작 장편 소설 『파견자들』은 출간 이후 한 달 넘게 소설 분야 10위권을 지키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우주로부터 불시착한 먼지로 인해 낯선 행성으로 변한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장편 소설이다. 변해 버린 지구를 탐사하고 마침내 놀라운 진실을 발견하는 파견자들의 이야기를 존재에 대한 섬찟할 만큼 아름다운 시선으로 그려 낸다.
독자들의 주목을 받은 SF 소설 Ⓒ자이언트북스・퍼블리온・문학동네

독자들의 주목을 받은 SF 소설
Ⓒ자이언트북스·퍼블리온·문학동네

5월에는 마찬가지로 한국과학문학상을 받은 『천 개의 파랑』을 통해 이름이 알려진 천선란의 『이끼숲』이 출간 직후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정보라의 호러∙SF∙판타지 소설집 『저주토끼』는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로 선정되며 큰 화제를 모은 데 이어, 올해에도 전미도서상 번역 부문의 최종 후보에 오르며 해외 문학상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후보 지명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관심을 끈 정보라 작가는 『한밤의 시간표』, 『밤이 오면 우리는』 등을 펴낸 국내 대표적인 SF 소설가이다. 이 밖에도 10월 역사 소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로 돌아온 정세랑도 SF 장르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다. 한국 SF씬은 그 어떤 장르보다도 넓은 작가층을 보유하게 됐다. 내년에도 SF 소설의 일기 예보는 ‘맑음’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김슬기
김슬기(매일경제신문 문화스포츠부 기자)

2008년 매일경제신문 입사 후 15년째 문학과 출판 분야를 비롯해 문화계 여러 예술 장르를 대중들에게 쉽게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서평집 『읽는 척하면 됩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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