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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

아트 페어의 이유있는 부상
새로운 수요와 시장 전환의 시너지

작품 감상부터 작가와 갤러리 홍보, 미술품 구매까지
한자리에서 이뤄지는 아트 페어(Art Fair)는 현대 미술 시장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세계 3대 아트 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Frieze)와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 페어로 손꼽히는 키아프(KIAF)가 동시에 개막하며
이목을 집중시킨 가운데 한국은 미술 시장의 새로운 허브로 떠올랐다.
아트 페어가 주목받는 지금의 흐름을 세 개의 시선으로 살펴본다.
글_이지현,이대형,권민주
취향을 확인하고 트렌드를
경험하는 공유의 장
미술 작품 거래는 크게 갤러리나 아트 페어에서 이뤄지거나 경매를 통해 판매된다. 이 중 최근 가장 뜨겁게 회자되는 곳은 아트 페어로 올해 상반기 개최된 주요 6개(화랑미술제, bama, 더프리뷰, 아트부산, 조형아트서울, 아트페어대구, 울산국제아트페어) 아트 페어의 판매금액이 모두 작년 대비 100%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최초의 아트 페어라 불리는 화랑미술제와 부산의 최대규모 아트 페어로 여겨지는 아트부산은 올해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또한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술품을 살 수 있는 주요 채널인 경매 역시 지난해에 비해 거래액은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대비 판매금액은 165.6% 급증했고, 관람객도 36만 3천 명으로 작년 동일 대비 72% 증가했다.

최근 작품을 구입한 이유(복수응답, 단위: %) ⓒ예술경영지원센터

긴 시간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 여파와 낙관적으로 볼 수 없었던 경제 상황 속에서 아트 페어의 기록적인 매출은 함의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 같은 아트 페어의 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술품 구매자, 즉 신흥 컬렉터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간한 『한국MZ세대 미술품 구매자 연구』에 따르면 MZ세대가 미술 작품을 구매한 이유 가운데 ‘공간 인테리어’ 목적이 36.4%로 나타났다. 다른 세대에 비해 구매 시 작품을 놓을 공간과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장식적이면서도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을 소비하는 경향이 강한 컬렉터에게 다채로운 작품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아트 페어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 같은 신흥 컬렉터의 구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트 페어 역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단색화, 추상화, 구상화 등 뚜렷한 흐름을 보였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부스마다 각각 다른 개성과 색깔을 보여준다. 일부 미술계 관계자들은 ‘젊은 컬렉터가 대중문화의 가벼운 캐릭터 이미지만을 찾는다’고 이야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흐름은 유지하되, 새로운 화풍을 추가해 간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이렇듯 인테리어를 중시하고 구매력을 갖춘 2030 세대에게 이미 검증된 작가들의 2차 거래가 이뤄지는 곳보다 새롭더라도 자신의 취향을 빠르게 찾아내고, 다채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페어에서의 만남이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또한, 아트 페어에서 새로운 고객 눈높이에 맞춰 신규 작가들의 작품을 주력으로 내세우는 갤러리도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메이저 아트 페어와 다르게 신진 작가 발굴 플랫폼 역할을 하는 신규 아트 페어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한카드가 만든 ‘더 프리뷰 아트페어’, 블라인드 인터뷰와 전시 계획서만으로 작가를 선정하는 ‘빈간 아트페어’를 예로 들 수 있다.

‘더 프리뷰 아트페어’ ⓒ더 프리뷰 공식 홈페이지

신흥 컬렉터들에게 아트 페어가 더없이 즐거운 행사로 자리매김하게 된 마지막 이유는 ‘쉬운 접근성’ 때문이다. 아트 페어는 기존 미술 시장과 깊게 관계를 맺어온 컬렉터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또한, 각 갤러리가 주력으로 내세우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놓기에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같은 익숙함 속에서 미술 시장의 트렌드를 살펴보고, 그 속에서 자신에게 꼭 맞는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경제 불황과 무관하게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서라면 큰 금액도 투자하는 신흥 컬렉터에게 아트 페어는 단순한 미술 작품 거래를 뛰어넘어 나의 취향을 확인하고 트렌드를 경험하는 기회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지현
이지현(널 위한 문화예술 COO)

학부에서 경영학과 회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예술 경영학을 공부했다. 스타트업 〈널 위한 문화예술〉에서 예술의 가능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다. 회사 밖에서는 예술이 작동하는 순간을 탐구하는 문화 기획자로 활동하며, 예술을 기획하는 사람들과 연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연결된다, 고로 존재한다’
2023년 컬렉터를 말하다
미술 시장은 상징 지표를 거래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철학적 스토리가 어떻게 개인, 시대, 국경, 역사를 관통하며 어떤 흥미로운 상징을 만들어 내는가의 경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 이유로 작가를 둘러싼 큐레이터, 평론가, 저널리스트, 미술사가 등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전문가들의 역학 관계를 이해하고 협업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우리는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인스타그램에 올린 작품이 팔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온라인을 통한 리서치와 검증, 그리고 실제 구매까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컬렉터의 등장을 의미한다. 지금까지는 소수의 컬렉터가 큐레이터, 옥션하우스, 갤러리 등 미술계 인사들과의 친분과 교류 속에서 고급 정보를 얻는 정보 비대칭의 독점적 수혜자였다. 그러나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가져온 정보의 투명성과 속도, 그리고 네트워크의 속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MZ세대의 활약은 전통적인 미술 시장에 파괴적인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프리즈 서울 2022’를 찾은 방문객들
ⓒFRIEZE 공식 홈페이지

이들은 메타버스, SNS, 유튜브, 미닝아웃, 당근마켓 등 새로운 연결 방식에 기반한 소비 문화를 대변한다. 실시간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네트워크로 연결한 집단 지성을 끌어내고, 동시에 소비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데 의미를 둔다. 이들의 방대한 학습 능력은 경제학과 미술사, 주관적인 취향과 객관적인 데이터 모두를 섭력하며, 이자율, 기회비용, 해지 펀드, 블록체인, AI, 인류세 등 경제, 금융, 테크놀로지, 환경, 철학적 용어까지 소비한다. 자신의 주관적인 취향과 외부의 객관적인 정보 사이의 밸런스를 분석할 줄 알고, 과거의 정보를 통해 패턴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길 좋아한다. 그 결과 거시 경제 정책과 미시 경제 전략이 어떻게 이자율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미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미술과 금융 생태계 전체의 상호작용으로 확장해 큰 그림을 보길 원한다. 그리고 첨단 AI 기반 예측 테크놀로지가 미술 시장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자본과 기술, 금융 지식과 미술사로 무장한 이들이 더 많은 변화를 주도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이들의 존재는 ‘나는 연결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식의 새로운 차원의 해석을 요구한다. 여기서 이들이 연결되고 싶은 대상은 단순히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대 가치이다. 최근 지속가능한 미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며, 컬렉터들 역시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행동에 동참하고 있다. GCC(Gallery Climate Coalition), Gallery Commit, Art+Climate Action, Ki Culture 등이 좋은 예이다. 이들 기관은 예술 작품의 창작, 운송, 유통, 소비 전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각 단계별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을지 연구하며, 이에 따른 실천을 독려하고 있다. 이들에게 작품을 구매하면서 항공 운송이 아닌 해상 운송을 요청하면 탄소 발자국을 95% 이상 감소시킬 수 있고, 조금 불편해도 일등석이 아닌 일반석에 앉아 여행하면 탄소 발자국을 5배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다.

환경보호와 탄소 발자국 감소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GCC(Gallery Climate Coalition) ⓒGCC 공식 홈페이지

소유경제는 컬렉션의 시대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경험 경제 시대에는 커미션(commission)이 어울린다. 커미션은 컬렉터(후원자)와 작가가 긴밀하게 소통하며 만들어 가는 결과물이다. 작가의 사상과 철학, 그의 시대 가치를 지지하고 그것이 타협하지 않고 온전하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내는 역할까지 해낼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 커미션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차원의 컬렉터는 미술 시장의 상징체계를 만들어 가는 스토리의 동반자,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이대형
이대형(Hzone 대표)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큐레이팅의 영역을 환경, 커뮤니티, 기술, 미래 등으로 확장하고 있다. 최근 CONNECT, BTS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총괄 기획했으며, 2023년 싱가포르 ArtScience Museum의 인터내셔널 어드바이저로 선정됐다. 또한 전 구겐하임 미술관 이사장 제니퍼 스톡맨과 2023년 개봉할 영화 Namjune Paik: Moon Is the Oldest TV의 Co-executive Producer로 참여했다.

일상과 결합한
미술 작품의 패션쇼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미술 작품의 거래 수는 급격하게 늘었지만, 거래 금액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품의 가격대는 낮아졌지만, 새로운 컬렉터의 유입은 늘어난 것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21년 한국 미술 시장의 규모는 2배 이상 증가했다. 급속도로 커진 국내 미술 시장의 규모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할 수 있으나, 한국의 경제 규모에 비해 미술 시장의 규모는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작다. 경제 규모에 비례하는 미술 시장의 규모로 가늠해보자면, 한국의 미술 시장은 앞으로 더 커질 잠재력을 갖고 있다.

‘프리즈 서울 2022’ ⓒFRIEZE 공식 홈페이지

아트 페어는 여러 갤러리가 참여해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행사이다. 다양한 작품을 한 공간에서 보고 구매할 수 있어 컬렉터들은 아트 페어를 놓치지 않고 방문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미술 시장 역시 변화하면서 아트 페어의 역할과 기능 또한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1967년 최초의 국제 아트 페어인 독일의 ‘쾰른 아트페어’가 열린 지 50년 이상 지났다. 사회의 변화에 발맞춘 크고 작은 새로운 아트 페어가 생겨났고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메이저 아트 페어도 등장했다. 더 이상 아트 페어는 개별적인 미술품이 거래되는 시장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메이저 아트 페어가 진행될 때 도시 내에 크고 작은 다른 위성 페어가 함께 열리고, 미술관과 갤러리들도 주요 전시를 오픈한다. 아트 페어를 통해 전 세계 큐레이터와 비평가, 갤러리스트, 아트컬렉터들에게 작품을 선보이는 다양한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일례로 필자가 몸담은 ‘프리즈 아트페어’는 아트 페어 동안 도시의 전반을 아우르는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한다. 시각예술에만 국한하지 않고, 디자인과 패션, 뷰티, 필름, 차 등 흔히 다양한 분야와 융합한다. 이를 통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미술을 경험하고 트렌드를 살펴보도록 돕는다.

‘쾰른 아트페어’에서 열린
‘예술 시장의 여성’을 주제로 한 토론 행사 ⓒartcologne

최근 아트 페어의 경향은 패션계의 패션쇼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패션쇼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앞으로 다가올 계절에 맞춰 새로운 옷들을 선보이는 장으로 대중은 패션쇼를 통해 이번 시즌의 트렌드 컬러, 디자인 경향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아트 페어도 그렇다. 갤러리들은 그동안 준비한 작가들의 신작을 아트 페어에서 선보이고 컬렉터들은 페어에 방문해 미술 시장의 새로운 동향을 공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트 페어는 꼭 컬렉터가 아니더라도,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 미술 비평가 등 다양한 미술 현장 종사자도 방문해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짚어 볼 수 있다.
권민주
권민주(프리즈 VIP 아시아 총괄 디렉터)

올해로 10년째 아트 페어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2012년부터 아트부산 팀장을 거쳐 부산화랑협회 디렉터로 활동했다. 2018년부터 프리즈 팀에 합류했으며, 2022년 ‘프리즈 서울’을 론칭하면서 글로벌 미술시장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국내 미술과 지역 미술, 더 나아가 한국의 전통문화를 전 세계에 소개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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