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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제 민간위원회로의 전환,
미래 거버넌스를 위한 제언

지난 2005년 문화예술인 중심의 합의제 기구로 개편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전환의 가치를 지키고 있는가?
다양성, 창의성, 자율성을 신장하고 문화예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합의제 전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의 필요한 거버넌스는 어떤 모습일까?
글_배관표(충남대학교 국가정책대학원 교수)
팔길이 원칙을 목표로 한
예술 행정의 전환
1973년 개원했던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하 문예진흥원)은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로 개편됐다. 2003년 대선에서 문예진흥원을 문화예술인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이 있었고, 문화예술계가 다 함께 “문화예술위원회 설립은 문화적 다양성, 창의성, 자율성 신장을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라며 목소리를 높인 결과다.1 문화예술인들은 예술위가 정부는 지원정책의 결정 및 집행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에 충실한 기구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문화예술인들의 큰 박수를 받으며, 2005년 자율성을 확보해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을 제고하려는 예술 행정의 전환이 시작됐다.2
문예진흥원이 독임제 기구라면 예술위는 합의제 기구이다. 합의제 기구로의 전환을 통해 어떻게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첫째, 문화예술인들의 목소리가 대표될 수 있다. 문화예술 각 분야의 인사가 균형 있게 포함된 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을 통해 다수의 위원을 위촉함으로써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됐다. 둘째, 기관의 독립성이 제고될 수 있다. 문예진흥원장은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이하 문체부) 장관이 임명해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예술위 위원장은 위원 중 호선하도록 했기 때문에, 문체부로부터의 계서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셋째, 공정한 결정이 가능하다. 문화예술진흥기금(이하 문예진흥기금)을 배분하는 데 공정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독임제 기구에서는 한 명의 기관장이 의사결정의 권한과 책임을 독점한다면, 합의제 기구에서는 그렇지 않다.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출석과 출석 위원 과반수 찬성 의결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편향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줄어든다.
자율성 회복을 위한 예술위의 노력
그러나 기대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대표성과 독립성, 공정성 모두 위기를 경험했다. 1기 위원회는 문학, 미술, 음악, 연극, 무용, 전통예술, 문화기획 등 주요 장르에서 고루 위원을 선발했는데, 장르 간 갈등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금 배분을 둘러싸고 위원들 간 대립이 지속됐고, 2007년 원월드뮤직페스티벌 개최를 두고는 법정 공방까지 벌어졌다. 결국 김병익 초대 위원장이 임기를 채우지 않고 사퇴했으며, 그 여파로 위원 임명에서 장르별 배정이 지양되기 시작했다. 논란은 위원장 임명을두고도 발생했다. 2대 김정헌 위원장이 기금 운용 규정 등위반에 따른 혐의로 2개월 만에 해임되는 사태가 벌어지며, 정권이 바뀜에 따라 예술위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김 위원장은 문체부 장관을 상대로 해임 무효확인 청구 소송을 진행해 승소했으며, 2명의 위원장이 함께 재직하는 초유의 사태가 연출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정치적 개입논란은 이어져 지원의 공정성이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까지 겪게 됐다. 2018년 5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총 342개 예술단체와 8,931명의 예술인이 블랙리스트에 등재돼 사찰, 검열, 지원 배제 등의 피해를 입었으며, 예술위 역시 블랙리스트 실행의 한 축을 담당하여 큰 비난을 받았다.
아르코 현장소통 소위원회 지역 간담회

아르코 현장소통 소위원회 지역 간담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위는 ‘퇴색된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해3 자체적으로 혁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8년 예술인과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혁신 TF를 구성하고, 혁신안을 내놓은 이후 하나씩 실천해 왔다.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은 현장 소통 활동이었다. 6기 위원회와 7기 위원회에서 현장소통위원회가 설치돼 예술 현장과 예술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회의 결과를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지역간담회를 실행하기도 했다. 8기 위원회에서는 현장 업무보고 활동이 이어졌다. 예술위는 문화예술인들에게 직접 업무보고를 실시했고,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했다.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2018년 심의업무 공정처리 규정을 제정했다. 예술인의 입장에서 심의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내부 TF를 운영해 제도 개선방안을 도출하고 적용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대표성과 공정성의 측면에서는 제도 개선이 상당히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해볼 수 있다.
한편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자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예술위의 독립성은 확보된 것일까? 2007년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예술위가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준정부기관의 장은 임원추천위원회가 복수로 추천한 사람 중에서 주무기관의 장이 임명한다’는 제26조에 따라 호선제가 폐지된 바 있었다. 합의제 기구 전환의 핵심 사항이 무위로 돌아간 것이었다. 호선제 폐지로 위원장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문체부 장관이 임명하게 됐다. 그러나 2019년 기타공공기관으로 전환하면서 2020년 호선제를 복구시킬 수 있었다. 기타공공기관 전환으로 기획재정부로부터 경영평가를 받지 않게 된 점도, 독립성 확보에 상당히 기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준정부공공기관에서 기타공공기관으로 전환한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문예진흥기금 고갈 문제이다. 재원의 불안정성은 자율성의 실질적 발휘를 제약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문예진흥기금은 기초예술 진흥을 위해 마련한 유일한 재원으로 극장 및 공연장의 모금을 통해 조성되고 있었다. 그러나 2003년 말부터 준조세 정비방안에 따라 모금을 통한 재원 마련이 중단되면서 고갈 위기를 맞았다. 자체 수입보다는 타 기금이나 일반회계 전입금 위주로 재원을 확보할 수밖에 없게 됐다. 복권기금으로부터 상당 액수가 전입되고 있지만, 이 전입금은 복권기금 공익사업의 기본 특성상, 저소득층을 위한 향유사업에 사용할 수밖에 없어 창작지원을 위한 예산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그리고 일반회계 의존이 불가피한데 일반회계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계획하고 시행하기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8기 위원회는 문예진흥기금 재원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성과를 확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내부를 넘어 외부 거버넌스를
고민해야 한다
50주년을 맞이한 현재는 한발 더 나아가 거버넌스를 고민해야 한다. 2005년 전환 이후 지금까지의 활동들이 내부 거버넌스 개편이라면, 이제는 외부 거버넌스까지 고민해야 한다.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문화예술인들은 문체부의 예술정책 기능의 전환을 요구한 바 있다. 예술인들은 문체부의 관련 부서들이 장르별로 구성돼 있어 세부 사업까지 직접 결정하고 산하기관들을 지나치게 통제하는 점을 지적하며 국가예술위원회 설치까지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체부의 변화는 발견되지 않는다. 문체부 조직은 그대로이고 사업도 큰 차이 없다.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블랙리스트만 없을 뿐이지 통제는 사라지기 어렵다. 예술위의 자율성 회복은 시소게임과 같아 문체부의 구조 변화가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외부 거버넌스 개편의 시작이 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예술인들은 문체부와 예술위 간의 수평적 협력관계 제도화도 요구한 바 있다. 문체부는 예술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영국 사례를 조사했다.4 영국의 문화부(Department for Digital, Culture, Media & Sport)는 잉글랜드 예술위원회(Art Council England)와 운영협약을 맺고 수평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있다. 영국 사례를 벤치마킹해 2021년 문체부와 예술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자율 운영 보장’을 공동 선언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충분하지 못다. 영국의 운영협약은 5년마다 맺는데 성과 측정이나 재정 통제에 관한 내용까지 담고 있으며, 그만큼 잉글랜드 예술위원회의 재량을 확실히 보장한다. 한국의 선언은 문자 그대로 선언적인 측면만 담고 있다.
한편 지원기관에는 문체부와 예술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체부 산하에 다양한 기관들이 있다. 기능별 지원기관뿐만 아니라 장르별 지원기관도 많다. 증가세는 이어져 2005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2009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2012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된 바 있다. 지역으로 가면 문화재단이 있다. 모든 광역자치단체에 광역문화재단이, 대략 절반의 기초자치단체에 기초문화재단이 설립돼 있다. 그 수는 매년 늘고 있다. 예술인들은 더 이상 예술위를 통해서만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다른 산하기관들과 문화재단을 통해서도 지원받는다. 지원의 가외성(redundancy)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에 환영할 일이지만, 예술위가 아무리 팔길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팔길이 원칙의 실패로 어려움을 겪게 됐다. 예술위는 예술위만의 자율성이 아니라 예술 행정 거버넌스 전반의 자율성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예술위는 다양한 기관들과 함께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예술인들의 입장에서 거버넌스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외부 거버넌스 개편은 내부 거버넌스와 달리 예술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떤 기관도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술위의 역할이 중요하다. 예술위가 예술 행정의 핵심 기관인 만큼, 외부 거버넌스 개편에도 관심을 갖고 성공적인 개편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물론 예술위를 응원하는 예술인과 전문가들의 참여도 필요할 것이다.
  1.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환에 따른 문화예술계 연합성명서>. 2003.11.25.
  2. 한국은 영국을 벤치마킹했다. 영국에는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Department for Digital, Culture, Media & Sport)가 있고 잉글랜드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체제가 유일한 방안은 아니었다. 예술정책 및 행정 체계는 국가마다 다양하다. 프랑스는 문화부(Ministère de la Culture)가 직접 예술정책과 행정을 챙긴다. 한국의 예술정책 및 행정 체계는 프랑스 방식에서 영국 방식으로 바뀐 것이라고 평가해볼 수 있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그러하다.
  3. 성연주(2015).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퇴색된 자율성: 2005~2013을 중심으로. 경제와사회, 108. 199-230. 참고
  4. 전병태(2018). 영국 문화부와 예술위원회 간의 운영 협약 사례 연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배관표
배관표(충남대학교 국가정책대학원 교수)

충남대학교 국가정책대학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시아문화개발원(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에서 일하며 문화체육관광부의 관리감독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입법조사관(문화예술∙문화재 분야)으로 일한바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블랙리스트 실행: 관료의책임성 관점에서」 등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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