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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스페이스 코스모스
이지웅 개인전: 부산물
2025년 10월 1일(수)~10월 19일(일)
인천시 중구 내동. 월~일요일 11~18시.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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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려낸 기억: 사물과 공허의 잔여, 재생성의 서사
이지웅 개인전
정찬용(독립 큐레이터)
이지웅의 작업은 일상 속 남겨진 사물과 풍경에 깃든 기억을 새롭게 불러내는 과정이다. 겉보기에는 소모된 물건, 어딘가에 방치된 기계나 술병, 그리고 모자의 잔상 등이 담담하게 놓여 있을 뿐이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인 “오려진 기억”은 이 대상을 단순한 사물이 아닌 새로운 서사의 출발점으로 전환한다. 이미 사라졌다고 여겨진 사건을 현재 시점에서 되살리고, 관람자에게 다시 음미하도록 만드는 이 조각화된 기억의 재배치는 결과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겹쳐 놓는 기묘한 내러티브를 형성한다.
“오려진 기억”이라는 말은, 작가가 일상에서 접한 장면이나 물건을 물리적으로 오려 붙인다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 자체가 완결된 서사가 아니라, 조각난 상태로 존재하다가 불현듯 현재로 파고드는 ‘비정형적 흐름’을 암시한다. 예컨대 시위가 끝난 뒤 남겨진 의자나 확성기는 용도를 상실한 채 주위의 소음과 인파가 사라진 공간 속에서, 전혀 다른 맥락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 이지웅은 그 무심히 버려진 물건을 마치 다시 살아나는 주연처럼 전면에 세움으로써, 과거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로 재현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는 사르트르의 명제1와도 어우러진다. 본래 본질이 정립되지 않았던 객체(사물, 인물, 풍경의 파편 등)가 예술가의 시선과 결합할 때, 완전히 다른 존재 방식으로 펼쳐진다. 술병 더미에 “대화의 예열이 필요할 때”라는 제목을 붙이는 행위, 에어컨 실외기를 “충정로에서 열심히 일하는 기계”라 명명하는 과정 모두 그러한 ‘본질 부여’가 은유나 상징의 형태로 일어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즉, 사물이 갖고 있는 원래 맥락은 일종의 백지 상태에 가까웠으나, 이지웅의 작업 속에서 부여된 새로운 정의가 그 사물을 하나의 “기억의 계기”로 거듭나게 한다.
하이데거의 ‘도구적 존재(Zuhandenheit)’가 제 기능을 상실했을 때 나타나는 낯섦2은 여기서 더욱 선명해진다. 언뜻 보면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물건과 장면, 인물을 마주친 관람자는 그 대상이 원래 어떠한 기능과 맥락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형성했었는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은연중 내포하게 된다. 기능이 멈춘 도구나 정지된 화면은 본래 배경에서 벗어난 채 기괴한 정체성으로 남는데, 이지웅의 작업은 그 기괴함을 긍정적으로 전유해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끌어낸다. 그 결과, ‘오려진 기억’을 촉발하는 통로가 마련되고, 관람자의 경험과 맞물려 다양한 해석이 생겨난다. 작품 제목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속내”, “대화의 예열이 필요할 때”, “의지” 같은 은유적 표현들은, 그 대상이 단순히 시각적 대상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 주체로 제시되도록 유도한다. 대상이 본래 의미는 이미 소된 채,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을 때, 관객은 화면의 대상에 깃든 정서나 상황을 상상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감각을 얻는다. 그리고 그 연결은 이미 떠나간 시간이나 소소한 일상의 요소가 “오려진 기억”으로 되살아나도록 만든다.
장-뤽 낭시가 말하는 “공동체의 되살아남기(survivance)” 3를 상기하면, 사라졌다고 믿은 사건이나 관계가 사실은 이런 사물과 기억을 통해 다시금 현재에 편입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시위나 제 현장이라면, 원래 굉음과 인파에 묻혔던 일부 물건이 이젠 정적 속에서 남아 있을 때, 그 정적이야말로 또 다른 사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즉, 공허해 보이는 상태 자체가 사건을 현재화한다. 이지웅은 그 중간 지점에서 남겨진 것들을 포착하고, 자기만의 회화·설치·명명 방식을 통해 유동적 내러티브를 창출한다. 데리다 해체론에서 “주변부가 중심이 되고, 중심이 흔들린다”는 개념4은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이지웅이 대체로 인물이나 사건의 메인보다, 그 주변에 남은 사물·풍경을 조형적 중심에 세우고, 낯선 제목을 부여하는 행위는, 기존 질서나 위계를 전도시켜 새로운 의미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가령 ‘열광’ 자체가 아닌, 열광의 잔재가 작품의 주무대에 등장함으로써, 그 열광이 끝난 뒤 펼쳐지는 세계—소리 없는 풍경—이 오히려 더 진한 맥락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작가가 말하는 “오려진 기억”이라는 개념을 구체화한다. 즉, 기억은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가 복원되는 게 아니라, 늘 어떤 파편으로 존재하다가 현재 맥락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서사를 입게 된다. 물건의 맥락이 해체되거나 다른 맥락을 만나면, 그때껏 감어졌던 과거가 불시에 드러나며, 동시에 관람자는 자기 기억과 감정을 개입시켜 또 다른 내러티브를 만들게 된다. 이때 작가의 조형 기법은 그 파편들을 해석하는 결정적 열쇠로 작동한다.
결과적으로, 이지웅의 회화·설치는 한 번의 관람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것들”이 어떻게 또 다른 지점에서 의미화될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스피커나 안전삼각뿔, 간판 등이 고작 잔재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샤프나 연필이 누군가에게는 소모품에 불과했을지라도, 작가가 붙인 은유적 수사 한 줄, 혹은 커팅된 윤곽 하나가 거기에 서사를 부여한다. 그것이 곧 오려진 기억의 재생성 메커니즘이다. 남겨진 사물들이, 인물들이 미완의 조각으로 현전하여 관람자 각자에게 맞춤형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 거기서 파생되는 해석은 매번 유동적이다. 이는 일상의 주변부나 과거 사건의 잔재에 숨겨진 역동적 가능성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과거가 끝났다고 해서 의미까지 소멸되는 게 아니라, 사소한 물건 하나가 전혀 다른 시공 속에서 재맥락화되며 영속적인 이야깃거리를 창출해 내기 때문이다. 이지웅은 거기에 “오려진 기억”이라는 개념을 부여해, 과거의 조각이 어떻게 현재를 침투하고, 관람자의 인식을 흔들며, 다층적인 감각을 일으키는지 보여준다. 따라서, 그의 작품 세계는 단순히 포착한 특정 장면을 기록하거나, 물건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기억이 덧씌워지고 교차되는 유동적 장을 형성하는 예술적 실천으로 자리매김한다.
1 장-폴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이환 옮김(민음사, 2014).
2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이상섭 옮김(까치글방, 1998)
3 장-뤽 낭시, 『무위의 공동체』, 박준상 옮김(인간사랑, 2010).
4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 김성도 옮김(민음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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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중구 내동에 자리한 프로젝트 스페이스 코스모스에서 이지웅 작가의 개인전 《부산물》이 진행 중입니다 ?
전시개요
→ 이지웅 개인전 《부산물》 ~10월 19일(일)까지
· 작가: 이지웅
· 서문: 정찬용
· 운영: 월~일요일 11~18시
· 휴관: 휴관일 없음
· 요금: 무료
· 공간: 프로젝트 스페이스 코스모스
· 주소: 인천시 중구 우현로67번길 13 (내동 26-1), 2층
· 문의: ari_01@naver.com
ⓒ 정보와 자료의 출처는 이지웅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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